아인슈타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자로 부각된 것은 1905년 스위스 특허국 직원으로 있으면서 발표한 세 가지 주요 논문인 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때문이다. 논문을 발표한 이후 아인슈타인은 1909년 5월 취리히주립대학의 원외교수(정교수와 조교수의 중간)에 임명되면서 특허국을 사임한다. 그 후 프라하대학의 교수로 잠시 있다가 1914년
김철성 국민대학교 나노전자물리학과 교수가 306편의 ‘뫼스바우어 효과’ 관련 논문을 발표한 끝에 논문서열 9위에 올랐다.
이 순위는 뫼스바우어 센트리클럽 회원 중 현재 활동하는 과학자는 물론 서거한 과학자까지 포함해 평생 발표했던 논문의 총계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본, 중국의 과학자들을 제치고 아시아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논문서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