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그 어느 해보다 바쁜 한해를 보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2005년’ 행보를 보면, 한마디로 '10년 후 LG’를 위한 초석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구본무 회장이 ‘10년 후 LG’를 위해 준비하는 ‘거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슬하에 아들이 없는 구 회장의 입장에선 10년이 지난 후 ‘포스트’ 구본무 체제를 정비해야 했고, 둘째는 LG가 10년 뒤에도 소위 ‘일등LG’로 버티기 위한 차세대 성장엔진을 발굴, 안착 시키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 구광모 후계구도 확립
LG의 후계구도는 지난해 11월부터 가시화 됐지만 본격화 된 것은 올해다.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호적에 올렸다.
이 사건은 유교적 전통인 강한 구씨 가문의 전통과 연결해 , 재계에선 “구본무 회장의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 아니냐”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광모씨는 지난해 초부터 LG의 지주회사인 ㈜LG 주식을 꾸준히 매입, 지분을 늘려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LG그룹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앞으로 10년이나 후에 있을 일을 벌써 예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예순에 불과한 구본무 회장은 얼마 전까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지방 공장으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현장경영을 실천하는 것만 봐도 건강에는 자신이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나면 칠순이 되는 구 회장이 여전히 LG그룹 총수에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에선 “10년 후의 일이라도 이제부터 준비해나가야 탈 없이 그룹승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민단체나 정부의 눈초리가 재벌가의 상속에 대해 해가 넘어갈수록 매섭게 변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올 초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비상장사의 합병을 통해 편법증여를 시도하려다 시민단체의 지적에 따라 지분을 처분하는 헤프닝도 발생했었다.
게다가 지금 법정공방 중에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96년에 시작됐다. 이런 점을 따져볼 때 구광모씨의 양자입적과 동시에 광모씨의 LG 주식매입은 10년 후 그룹승계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후계구도 구축은 광모씨의 현재 보유한 ㈜LG와 LG상사의 지분 보유현황을 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광모씨는 지난해와 올해까지 두 회사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LG의 2.80%, LG상사의 0.82%를 보유하고 있다. 광모씨는 올해 각각 7대와 6대 주주로 등극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LG그룹은 지주회사격인 ㈜LG가 LG전자, 화학, 필립스LCD 등 거의 모든 계열사의 대주주이지만 LG상사쪽의 지분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과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 LCD 부회장만이 각각 0.10%와 1.68%를 개인주주차원에서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올 3월까지 LG상사쪽 지분이 전무했던 광모씨가 주차례에 걸쳐 주식을 매입해 LG그룹의 전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광모씨의 LG지분은 2.80%로 최대주주 구본무 회장을 필두로 특수관계인 지분 순서대로 볼 때 ‘넘버 7’에 불과하다. 최대 지분 순으로 구본무 회장(10.33%), 구 회장의 둘째 동생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7.50%),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4.76%), 구 회장의 셋째동생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4.30%), 구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씨(4.25%), 구자경 명예회장의 둘째사위 최병민(2.80%)씨 다음이다.
표면적인 지분순서대로 따져볼 때 지난해와 올해 광모씨의 주식 매입이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은 그룹 승계까지는 좀 거리가 있다. 이는 추가 주식매입에 따른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8%까지 지분을 올리는데도 어림잡아 600억원이라는 거액이 필요했다. 아무리 재벌가의 자제라고 해도 올해 서른 살이 채 안된 유학생이 감당하기엔 큰 액수다.
따라서 잠시 숨 고르기에 나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선 더 이상의 주식매입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광모씨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지분 4.76%를 합치면 구본준 부회장을 제치고 사실 상 넘버 2에 오르게 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LG그룹을 이끌 후계자는 광모씨로 낙점된 것일까. 그리고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과 양자인 광모씨간의 경영권 나눔과 재산분할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이처럼 아직 구 회장이 풀어야 할 후계 구도와 관련된 숙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 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등 통신사업 직접 챙겨
후계구도 구축과 함께 구본무 회장이 올 한 해 신경을 썼던 또 다른 한 축은 10년 뒤에도 지금의 LG가 존재하기 위해 소위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같은 어떤 기업도 넘볼 수 없는 주력사업을 발굴해 나가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작업이 바로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위기위식이 구 회장은 물론 그룹 내에 팽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투자전략팀장, 펀드메니저 등 총 50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향후 10년 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성장과 주식시장을 이끌어나갈 종목으로 삼성전자가 26%의 응답을 얻어 1위에 올랐다. 삼성그룹은 10년 후에도 반도체, 휴대폰 등 소위 ‘캐시카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업계 라이벌을 자처하고 있는 LG 구본무 회장의 고민이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배경아래서 한때 신사업 구축을 위한 LG의 전방위적인 M&A설이 돌았던 게 사실. 구체적으로 하이닉스 반도체와 하나로텔레콤이 거명되기도 했다. 특히 구 회장이 지난 99년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의 합병이후 불편한 심기 때문에 이후로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됐다는 일화가 나돌 정도로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평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소위 3콤인 LG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등 통신사업에 대한 경쟁력 제고에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이들 3곳의 통신업체들이 관련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이 없어 구 회장이 통신시장 재편에 대한 의지가 어느 해보다 컸다고 한다.
실제로 구 회장은 지난 6월과 7월 극비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남중수 KT사장, 진대제 정통부 장관 등을 만나 통신사업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구 회장의 이와같은 행보로 재계에선 “곧 LG가 통신사업에 대한 새로운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도 ‘구구절절’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연말인 지금까지 이렇다할 통신사업 개편에 대한 그룹 차원의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구 회장이 관심을 갖고 챙겼던 ‘3콤’사의 눈에 뛰는 실적이 도드라지고 있다. 지난해 2조2850억원의 매출과 22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LG텔레콤은 지난 3분기까지 1조3000억원의 매출(올해 예상매출액 2조5000억원)에 당기순이익이 744억원을 내면서 이미 지난해 순이익을 넘겼다.
데이콤도 지난 1조 685억원대 매출과 387억원의 당기순이익에서 각각 8288억원(올해 예상매출액 1조1220억원)과 508억원으로 초과 이익을 달성한 상태다. 파워콤은 올 9월부터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 사업이 80일만에 가입자수 15만명을 달성하면서 지난해 당기순이익 737억원에서 지난 3분기까지 629억원을 벌어들여 초과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여진다.
재계의 일각에선 후계구도 구축과 통신사업 진두지휘 등으로 볼 때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0년 후의 LG’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운 한 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