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DNA, 10活10廢] 정치•관료 낙하산 막고 능력 인사로 금융전문가 키우자

입력 2014-01-15 10:30 수정 2014-01-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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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깨지고 정규직 전환 늘었지만 비자금 조성•횡령 등 금융 성숙도는 아직

‘최초의 여성 은행장’, ‘최초의 계약직 출신 부서장’.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단어들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띈다. 금융권의 비일비재한 낙하산 인사와 여성·비정규직·고졸 등에 대한 차별이 금융 선진화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척박해진 영업환경에서 우수 인력마저 적극 활용하지 못하면 전체 생산성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 닻 올린 금융권 ‘여풍(女風)’ = 올해 금융권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인재 등용이다. 잇따른 여성 임원의 등장은 연초부터 금융권 전체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포문을 연 사람은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다. 권 행장은 국내 금융 역사상 11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그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유리천장을 깨고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을 내놓았다. 권 행장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한 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배출하는 등 금융권 여성 임원 발탁 붐으로 이어졌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에는 금융권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이름 난 한국은행에서 여성 부총재보가 나왔다. 서영경 한은 부총재보는 62년 한은 역사상 첫 여성 임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경제학계나 경제관료는 보통 남성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여성 인재들은 남자들에 뒤지지 않는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막혀 직장을 떠나야 했다”면서 “그러나 이제 국제통화기금 총재, 독일 총리, 그리고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등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리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시대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말했다.

사회가 선진화되고 소득이 늘어감에 따라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금융권 여성 임원 탄생 붐이 미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효성 있는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딱딱한 금융기관의 조직문화에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의 전문성이 잘 맞는 편”이라면서 “이들이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하고 출산 및 육아휴직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정규직 전환 늘고, 계약직 출신 부서장 탄생 =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에서는 고용인력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 정규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금융권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시작한 것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이 오히려 생산성 저하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07년 정규직 전환의 첫 물꼬를 튼 이후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외환은행은 올해 1월부터 영업점과 본점의 로즈텔러와 별정직원 등 무기계약직 2000여명을 정규직 6급으로 전환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4월 2011~2012년 채용된 창구 전담, 사무직원과 CS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44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특성화고 졸업예정자 140명도 전원 정규직으로 선발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초 계약직 텔러직군 830여명을 리테일서비스직군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직원들은 모두 정년(만 58세)이 보장되고 처우 및 복리후생 등을 기존 직원들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한은에서는 계약직 출신의 부서장도 나왔다. 김현정 신임 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정기공채가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된 후 팀원, 팀장을 거쳐 부서장 직책에 오르는 최초의 직원이다. 이밖에 이미경 검사역은 여상 출신 직원으로는 처음 3급 차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정규직 전환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금융사에 인건비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임금이라는 것은 절대 수준도 중요하지만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규직 전환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금융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승진체계를 바로잡고 임금 상승 폭은 줄이는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돈과 인재가 모이는 곳은 언제나 발전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인 곳이 있다. 바로 한국의 금융사다.

세계경제포럼(WEF)이 14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 성숙도는 81위를 차지했다. 전년(71위)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한국의 국가 경제 전체 수준(25위)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당국의 비호 아래 사실상 독과점적 이익을 누리는 것은 물론 최고 수준의 연봉으로 화려한 경력의 인재들이 너도 나도 몰리고 있지만 금융권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무엇 때문일까.

금융업계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낙하산 인사’와 ‘관치’를 지목했다. 산업 자체의 경쟁력보다 규제당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다 보니, 낙하산 인사가 판을 치고 있다. 금융사 내부적으로도 힘이 센 낙하산 인사가 왔으면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금융사를 보면 정권 교체 때마다 모피아(옛 재무부 영문명 Mofe와 마피아의 합성어)나 정권 창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공신 등의 낙하산 인사들이 금융사는 물론 금융 부문 협회 수장 자리를 점령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한편에서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금융사의 수장 자리에 출신이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금융업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교수와 관료가 금융회사에 낙하산으로 오는 것은 다른 선진국 금융사들을 봐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중앙 공무원들 사이에서 모피아 출신들이 가장 부러움을 사는 이유가 퇴임 후 최고 연봉 30억원에 이르는 ‘황금의 자리’인 금융사 수장 자리로 옮길 수 있다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낙하사 인사로 인한 병폐는 최근에도 금융권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자산기준 국내 1위 은행인 KB금융의 사태는‘낙하산 인사’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민은행 도쿄지점 30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은 물론 은행장 집무실이 있는 본점에서 신탁기금본부 직원들이 국민주택채권을 포함한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파는 수법으로 100억원대로 추정되는 거액을 횡령하는 사건이 작년에 드러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은행이 2대 주주로 있는 카자흐스탄 BCC(센터크레디트은행·Bank Center Credit)가 한 달간 외환업무를 정지당하고 중국 현지법인 인사(人事)와 관련, 금융당국의 지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은행장과 이사회에 보고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이렇게 국민은행이 ‘리딩뱅크’에서 ‘비리 백화점’이 된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낙하산 인사로 인한 불안정한 지배구조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내부 연고가 없는 낙하산 회장이 부임해 무리한 사업을 펼치고,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하다 보니 능력보다는 정치가 우선하고, 그러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정권 실세가 KB금융을 좌지우지하면서 그동안 묵혀놨던 문제들이 최근에 일제히 터지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KB금융의 30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 100억원대 횡령 사건 모두 이 전 대통령의 대학 동문인 어윤대 회장 때 발생한 일이다.

이번에 신임 회장과 행장이 오면서 비리들이 한꺼번에 확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KB금융은 정부 지분이 없는 순수 민간회사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실세와 가까운 사람이 최고 경영진을 맡아왔다. 실세 경영진이 오면 그 밑의 임원들도 경영진 입맛에 따라 바뀌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부통제의 구멍은 커졌다.

KB금융 사태는 또 모피아로 불리는 관치금융 인맥으로 맺어진 금융당국이 감독을 소홀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다.

다른 금융사도 예외는 아니다. 파이시티펀드 불완전 판매 의혹을 받고 있는 우리금융도 당시 CEO가 이 전 대통령과 동문인 이팔성 회장이다. 하나금융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비자금 의혹 등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이제는 금융사에 걸맞은 능력을 겸비한 CEO가 와야 한다. 2014년 갑오년 ‘청마의 해’부터는 금융권 경쟁력을 갉아먹는 낙하산 인사와 관치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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