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기적 새로 쓰자] 이헌재 “시장이해 부족한 경제민주화·변화 못쫓아가는 정책 마찰 빚어”

입력 2013-08-19 10:20 수정 2013-08-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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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력 회복 정부 주도론 안돼... 중간층 복원시켜야 경제 살아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책 흐름이 시장과 자연스럽게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며 “누군가 정부부처 전체를 통제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제의 위기극복 방안을 논하며 경제민주화 등 정부의 시장 규제 강화 기조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 경제의 기력 회복을 위해선 시장에 보다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 전 부총리는 최근 서울 경복궁 인근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시장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면서 “정책 흐름이 시장과 자연스럽게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위적인 대책은 한 바퀴만 돌면 끝난다”면서 “경제에 기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자유롭게 만들어야지 정부 주도로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또 “누군가 정부부처 전체를 통제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한다. 그에 대한 인식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상황에서 주목해야 하는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짚어 달라.

“경제이론의 지엽에 깔려 경제의 본질이 없어져 버렸다. 본질은 호모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인 경제인이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점이다. 어떤 개인도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될 수 있는데 이를 자꾸 분리해 보다 보니 음양의 조화가 부서지고 혼돈이 온다. 거시경제니 뭐니 경제이론에만 매달려서 사람이 가진 이중성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사람마다 밸류에이션이 다르지만 지금 저소득층도 고소득층도 소비 기여를 별로 못하고 있고 중간층은 부서져 있다.

소비가 부서졌다는 건 중간층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이 원인이 교육, 집 문제 혹은 사회 고용구조, 산업구조 때문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를 복원시키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을 쓰든 의미가 없다. 양의로 따지면 현재 겉으로 나타난 병이 굉장히 많다. 기본 문제는 기회 불균형이고 이는 호모이코노미쿠스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사회적 구조에서부터 출발한다. 문제를 거기서부터 하나하나 찾아가야 한다.”

△정부 정책은 많이 나오는데 서로 맞물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파동이 없어 보인다.

“지금 네이버나 카페베네, 크라제를 공격할 게 아니다. 예로 카페베네의 경우 생긴 지 몇 년이나 됐나. 공격하면 결국 기득권 보호가 되고 소비자가 불편해진다. 카페베네가 이제 커지고 사람들이 먹고 싶어 하는데 더 문 열지 말라고 하면 전국에 망이 깔려 있는 스타벅스는 뒤에서 웃을 것이다. 카페베네 때문에 골치 아팠는데 정부가 나서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주면 얼마나 좋겠나. 시장은 변화하는데 정책은 기존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으니까 마찰, 불협화음이 생겨서 시장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애는 쓰지만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보는가.

“옳은 걸 떠나 시장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책 흐름이 시장과 자연스럽게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과 정책의 호흡이 맞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문제를 쪼개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도 사람이 늘어야지 기왕에 세금 내는 이들을 더 쥐어짠다고 세금이 더 들어오나. 일자리를 나누면 고용은 일부 늘어나겠지만 원 라운드가 끝나고도 일자리가 느는가. 인위적으로 하는 건 한 바퀴만 돌면 끝난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에 기력이 있고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을 좀더 자유롭게 만들 것이냐 아니면 1960년대처럼 정부 주도로 할 것이냐 문제인데, 정부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부처들에 경쟁적으로 일을 시키면 우선순위에 있어 대혼란이 일어난다. 산업자원통상부 입장에선 자기 부처 일이 가장 상위이고, 국세청은 천하 없어도 세금을 걷어야 하는 식이다. 누군가가 전체를 통제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줘야 하지 않겠나. 나라 일이라는 게 정부부처 모두 일 년 열두 달 죽어라 열심히 일해야 좋은 게 아니다. 그에 대한 인식부터 하라는 것이다.”

△유능한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유능한 지휘자는 부드럽게 손가락만 슬쩍 움직여도 전체 화음이 생긴다. 또 대중에게 인터랙티브(Interactiveㆍ상호작용하는)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 몸짓을 크게 하지, 아무 때나 몸짓을 크게 하지 않는다. 정부부처도 일 년 내내 몸짓을 크게 할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때 목소리와 몸짓이 커야 시장에 먹힌다. 임팩트 있는 정책을 써야 한다.”

△지휘력 부재란 대통령의 문제인가, 경제부총리의 문제인가.

“사회 전체가 균형이 깨져 있는 상황이다. 권력구조에 중대 변화가 있다는 걸 인정 안 한다. 정부가 정책을 쓰려면 국회와 대화해야 하고, 국회는 지역구 여론에 의지하기 때문에 국민이 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즉 시장이 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시장을 잘못 지시해 놓으니 정부 정책과 마찰이 일어난다. 특히 경제민주화같이 애매하면서 정치적 성향이 강한 건 오더를 내리기 딱 좋은 것으로, 시장은 경제민주화가 굉장한 건 줄 알고 국회를 움직이려고 하고 정부는 조율하려 하지만 그러면서 마찰이 일어난다. 변화가 어디서 일어나고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인식하지 않으면 어렵다.”

△정치의 힘이 굉장히 커졌다.

“정치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커진 것이다. 정치 수요자로서 국민의 힘이 커졌다. 국회의원들도 예전엔 당 보스와 정치자금 대주는 사람들을 의지하면 됐지만 지금은 시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살아남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좋든 싫든 정부에 후배들이 일하고 있어 격려해줘야 하는데 그럴 기분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기죽일 수도 없다.”

▲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누구인가

DJ·盧 개혁정책 지휘…“난 시장주의자”

이헌재 전 부총리는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다. 이 전 부총리는 젊은층으로의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인터뷰 요청에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지만 그가 보인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은 경제난맥상에서 여전히 그를 주목하게 만든다.

이 전 부총리는 경기고,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천재’로 불렸고, 1968년 행정고시(6회)에 수석 합격하면서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1972년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으로 재직하며 8·3사채 동결조치를 입안했고, 1974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외환문제 해결에도 참여했다.

1979년 율산그룹 파동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20년 만에 공직에 돌아온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신설된 금융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임명돼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영전한 이후까지 재벌 개혁 및 금융시장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금융계의 황제’, ‘구조조정 전도사’라는 수식어는 물론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엔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8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 전 부총리는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으로 복귀, 정보기술과 사회간접자본에 10조원을 집중 투자하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비롯해 종합부동산세 도입, 자영업 대책, 벤처산업 활성화 대책 등을 밀어붙였다.

일각에선 이 전 부총리에 대해 ‘모피아식 관치금융의 화신’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 스스로는 자신을 ‘시장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 때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제 멘토로 나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1944년 중국 상하이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행정고시 6회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과장, 재정금융심의관 △대우반도체㈜ 전무 △초대 한국신용평가 사장 △증권감독원장 △초대 금감위원장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김앤장 비상임고문 △언스트앤영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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