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사정은 영 그렇지 못하다. 정부는 출범 이후 투자와 고용만 앞세워 기업을 압박해왔다. 이제 막 경기의 저점을 통과했지만 정부의 압박은 거셌다. 기업에 대한 요구만 있었고 그들의 요구는 들어준 게 없다는 불만도 이해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 입장도 참 난감하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마당에 바로 옆 일본은 환율로 장난질을 친다. 간신히 채웠던 곳간을 털어내며 버티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투자하고 고용하라’며 다그친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잠시 주춤거리면 바로 주먹이 나간다. 사정기관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여기저기를 들쑤신다. 큰 잘못을 짚어내고 들이닥치는 것도 아니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부터 ‘현장조사’를 앞세워 각 기업 계열사에 쳐들어간다. 대부분 무혐의로 처리되면서 사정기관의 ‘액션’일 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쯤 되니 각 기업마다 앞다퉈 스스로 ‘존재의 당위성’을 만드느라 밤잠을 줄이고 있다. “우리 회사가 작년에 낸 세금만 수조원이다”, “물류와 광고는 다른 기업에게 나줘주겠다”며 항변한다. 그래로 들쑤시기가 멈추지 않으면 추가로 사재까지 털어가며 액션을 취한다. 새 정부의 기업 압박이 전방위로 퍼지면서 재계는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다.
여기에 대기업 총수의 구속이 연이어 이어지자 외국인까지 적잖은 편견을 갖기 시작한다. “한국의 회장님들은 모두 범죄자냐”고 묻는 이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된다.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회장님의 구속에 이어 ‘신뢰도 하락’이라는 또 다른 벽에 가로 막히는 모습이다.
물론 그간 만연했던 재벌 총수의 솜방망이 처벌은 분명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때마다 사정기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때문에 이번엔 제대로 칼을 뽑아든 것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와 사정기관의 뚜렷한 행보는 지극히 잘한 일이다. 그러나 ‘고용과 투자’는 물론 대규모 경영전략의 최종 결정권자가 연이어 구속되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오로지 관심은 “다음 순서가 어떤 회장님이냐”에 모아질 뿐이다.
기업 총수들이 연달아 구속되면서 한국 기업의 신뢰도와 이미지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기업에게 대외 이미지 하락은 적잖은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기업별로 대응전략을 짜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기업과 국민은 알지만 정부만 모르고 있다. 하기야 정부와 청와대는 아무리 기업 이미지가 추락해도 무덤덤할 수 있다. 기업 이미지가 추락해 나라 망신을 시켜도, 대통령의 방미 길에 따라갔다가 성추행만 하고 돌아온 청와대 전 대변인의 나라 망신을 따라갈 수가 없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