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KTX로 40분, 출근길의 행복 - 김지현 질병관리본부 유전체센터 기술연구원

입력 2013-05-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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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충북에 위치해있다. 매일 KTX를 타고 다니며 출퇴근을 한다. 그런 까닭에 출근길은 지옥과 다름없다. 지하철 1대를 놓치면 지각을 피할 수 없다. 정해진 시간에 마을버스를 타고 역으로 이동해 매일 똑같은 지하철을 타야한다. 열차 간격 조정을 위해 1분간 정차하겠다는 지하철 차장의 목소리는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게 KTX에 올라탄다. 기차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출장길에 오르는 젊은 직장인부터 동반석에 앉아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이른 새벽임에도 졸린 눈을 부비며 차창 밖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꼬마 여행객들까지.

하지만 나에겐 그저 달갑지 않은, 일상적인 출근길이었다. 서울에서 오송역까지는 약 40여분이 소요된다. 기차를 타기 위해 목에서 피맛나게 뛴 날에는 겨우 숨을 가라앉히자마자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 흔히 말하는 기차여행의 낭만, 저마다 사연을 갖고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나에겐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출근 기차길에서 50대 직장인 한 분과 동석을 한 적이 있다. 희끗한 머리에 돋보기 안경을 쓰고, 신문을 보고 있던 그 아저씨는 헐떡이는 나를 보자 아직 뜯지 않은 물 한병을 건냈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며 출근길 40여분 동안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최근 사업 관계로 몇달 째 아침마다 동대구행 열차를 탄다는 그분 얘기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라리 대구에 거처를 구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안돼요. 외박을 하면 마누라가 하도 난리를 쳐서(웃음)”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며 서울을 동경했던 아저씨는 아직도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행 무궁화 열차에 올랐던, 첫 기차길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비록 몸은 힘들고 고되지만 매일 3시간여의 출근길을 여행으로 생각한다는 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아저씨는 나에게 스마트폰 보다는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보라고 말했다. 남들은 매연과 사람으로 가득한 도심 한복판을 활보하지만 아침부터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즐기며 잠시동안 나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차 출근길이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끝내고 다시 신문을 펼쳐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본 나는 조용히 이어폰을 꼽고 창밖을 응시했다. 논과 밭, 숲과 강물이 보였다. 그리고 불현듯 생각이 스쳐갔다. 이런 출근길이 나에게 행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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