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다시 청와대를 걱정한다

입력 2013-05-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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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윤창중, 그의 말과 글은 모질고 독하다. 그 모질고 독한 말과 글에 많은 사람들이 ‘희롱’을 당했다. 누구든 걸려들기만 하면 그 인격이 갈가리 찢겨졌다. ‘창녀’, ‘젖비린내 나는’, ‘미친 놈’, ‘시궁창 세력’….

왜곡도 꽤 있었다. 무슨 사건이든 마치 직접 본 듯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은데 자신은 이들의 의도를 모두 간파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도 많은 경우 정치적 편향이나 잘못된 상상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그가 인수위 대변인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또 한 번 큰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이렇게 입신한 그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를 쳤다. 그것도 성희롱으로 국익을 크게 손상시킨 사건이다. 혹독한 비판과 비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 정도로 하자. 사실 그에 관한 문제는 간단하다. 그가 인턴 여직원의 엉덩이를 쥐었고, 또 옷을 입지 않고 그 여직원을 불러 올렸느냐의 문제다. 한쪽은 그렇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신빙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단 그렇지 않다고 한다. 결국 미국 경찰과 법원이 가릴 문제다. 침착히 잘 기다리는 것도 국가의 격이다.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의사결정 기제와 조직운영 역량이다. 국가의 심장부가 이래도 되는가 싶은 대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현지에서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청와대에는 많은 회의체가 존재한다. 다양한 기능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정보교환과 역할조정, 그리고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순방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통상 현지에서의 상황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회의체가 만들어진다. 이번 경우에도 이런 회의체, 내지는 집합적 결정주체가 있지 않았을까? 있었다면 홍보수석은 왜 그 중요한 문제를 이 회의체에 올려 논의하지 않고 혼자 쥐고 있었을까? 이런 회의체에서 제대로 논의만 되었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텐데 말이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대통령만이 결정하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대통령과 각 수석이 수직으로 연결되는 구도가 강해 횡적 연계인 회의체의 기능이 약화되어 있다는 뜻인가? 어느 경우이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상시에도 회의체가 잘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의 효과적인 회의체 운영은 곧 생명과 같다.

다음으로 위기관리에 관한 문제다. 순방은 대단히 큰 프로젝트다. 크고 작은 위기 또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수행원의 실수나 잘못된 행태 또한 마찬가지다. 일종의 ‘알려진 위기(known crisis)’, 즉 예견할 수 있는 문제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꼭 성희롱이 아니더라도 ‘불미스러운 행태’ 등의 큰 분류로라도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 지침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매뉴얼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윤 대변인이 도망치듯 미국을 빠져나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중심인 청와대가 소속 공무원의 실수나 사고에 대한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거나 허술하다는 것인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는 윤 대변인 경질에 관한 부분이다.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으면 응당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오해의 여부가 없었는지, 또 수습할 대안은 없는지 등도 알아봤어야 했다. 아울러 가해자 본인의 소명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 없이 바로 경질이 이뤄졌다. 자체조사도 없고, 경질을 하더라도 언제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전략적 논의도 없었던 것 같다.

즉각적 경질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그렇게 한 것일까? 다른 의견을 가진 참모들은 없었을까?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제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을까?

국가의 심장부, 청와대의 의사결정 능력·의사결정 문화와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청와대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성실히 답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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