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카지노 먹튀’가 걱정된다- 강혁 부국장 겸 시장부장

입력 2013-05-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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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1일 청와대에서는 장장 10시간에 걸쳐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지식경제부는 “카지노 사전심사제(이하 사전심사제)가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은 보고를 채 마치기도 전에 “언제부터 얘기한 것인데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나. 한두 달 안에 고칠 것은 고치고 정비하라”고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질책했다.

대통령이 언성을 높이자 문화부의 반대로 표류하던 사전심사제는 급물살을 탔다. 대통령의 질책이 있은 지 이틀 후인 7월 23일 지경부는 사전심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경제자유구역법(경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고, 그후 9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사전심사제가 도입됐다.

경자법에 의하면 외국인 카지노를 허가받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5억 달러 이상 투자계획을 밝히고, 그중 3억 달러 이상을 특급호텔 건설에 실제 투자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사전심사제가 도입됨에 따라 실물투자 없이 투자계획서만 제출하면 카지노를 허가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신용등급, 자기자본액 또는 매출액, 부채비율, 순이익 등 허가를 위한 4개 의무 충족요건 중 부채비율과 순이익 둘 중 하나만 만족시키면 허가를 내주도록 바뀌었다. 투자 활성화 명분으로 카지노 설립 요건과 자격을 대폭 완화시켜 준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질책으로 급조된 사전심사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카지노 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전심사제의 가장 큰 폐해는 경제자유구역이 ‘먹튀’ 자유구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류심사만으로 허가를 내 줄 경우 실제 투자 여력이 없는 부실기업이나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우려가 있다. 손쉽게 허가를 받은 후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론스타 식 ‘먹튀’ 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사후약방문 식으로 허가를 취소하거나 규정을 보완하면 ISD(투자자 국가소송)에 제소 당할 개연성도 있다. 현재 사전심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외국 업체들의 경우 재무적으로, 도덕적으로 결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사는 부채가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재정상태가 심각하고, 또 다른 회사는 최고경영자가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전심사제의 또 다른 폐해는 경제자유구역을 카지노 자유구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서 카지노 유치를 추진 중인데, 서류심사만으로 허가를 내주면 카지노가 난립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카지노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거시적, 중장기적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 경우 되레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사전심사제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법 개정 없이 시행령에 의해 도입됐는데, 이는 분명 위법이다. 심지어 시행령 개정 전 관계부처와 10일간의 협의를 거치게 되어 있지만 당시 지경부는 유선으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문제점은 국회에서도 이슈가 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은 “사전심사제 도입이 경제자유구역법에 의하지 않고 시행령에 의해 도입된 것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포괄위임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 말기에 정부가 국회 심의를 받지 않기 위해 시행령만 고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 기류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장관은 사전심사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유 장관은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사전심사제는 외자유치를 위해 나온 것인데, 외자가 원활히 유치되도록 하는데 그 방법이 맞느냐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혜성, 졸속 제도로 지적받아온 사전심사제의 문제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서적으로,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이를 밀어붙일 하등의 이유도 명분도 없다. 정권도 바뀌고 각종 문제점도 드러났으니 원점에서 다시 재검토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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