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전성인 홍익대 교수 "맬더스와 민주주의"

입력 2013-01-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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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한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우울한 경제학자 맬더스의 말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구증가는 거의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인류의 보편적 문제였다. 넘쳐나는 인구에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생산량의 부족은 전쟁과 질병, 기아라는 소위 맬더스적 견제장치를 촉발했고, 그것이 또 다른 수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수많은 사회제도들은 인구 증가를 자명한 환경적 요소로 전제한 상태에서 설계되었다.

그런데 이 추세가 거의 인류 역사 최초로 반전되려고 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반전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인구 감소 추세의 의미가 어느 정도 파악된 분야는 노령화의 경제적 효과 측면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되고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다가 급기야는 음수가 되는 문제는 제법 많이 언급된 부분이다. 언제나 오를 것 같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것 역시 최근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포다.

그러나 경제적 효과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죽기 전까지 축적한 자산을 다 소모하기 위해 음(-)의 저축을 하는 노령 세대가 미래를 위해 양(+)의 저축을 하는 청년 세대를 압도하면서 국민경제의 총 저축은 음수가 되고, 이에 따라 경상수지도 적자로 반전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비가 생산을 초과해서 외국 제품을 수입해서 부족한 소비를 충당하게 되고, 그 결과 누증하는 대외 채무는 우리나라의 자산을 팔아 치우는 방식으로 갚아 나간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고용과 인플레이션간의 상충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과거 경제개발 연대에는 물가안정은 뒷전이었고 고용 또는 성장이 최고의 지상명제였다. 농가 소득이나 자식의 부양에 의존하던 당시의 노년층에게 물가불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베이비 붐 현상에 의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청소년층을 먹이는 문제는 국가의 가장 큰 경제적 현안이었다. 따라서 물가도 두 자리, 성장도 두 자리인 팽창적 해법이 경제정책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많은 노년층이 공적 연금, 개인 연금, 주택 연금, 즉시 연금 등 다양한 고정적 소득원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물가상승 연동 조항이 부가된 연금도 있지만 과거의 평균적인 물가상승을 보정해 주는 것이 노년층의 생계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노년층은 점점 성장촉진형 경제정책 보다는 경제안정형 경제정책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통화 정책은 만일 그것이 대중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면 저금리 대신 고금리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완전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노령 사회의 가장 큰 도전은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이다. 세대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50대의 폭풍 투표’로 요약되는 이번 대선의 결과는 이런 자각의 시발점이었다. ‘국민에 의한’ 정부는 노년층에 의한 정부가 되고 ‘국민을 위한’ 정부는 노년층만을 위한 정부로 단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이 복지의 핵심 쟁점이지만 머지않아 노령 연금과 노후 보장, 건강보험 혜택 등이 복지 분야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재원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청년층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어려운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생산을 하지 않는 노년층이 선거를 통한 국가적 의사결정 권한을 획득한 후 복지 혜택을 위해 생산 계층인 청년층에게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돈은 네가 내고, 혜택은 내가 보는” 이상한 구조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최근의 인구감소는 전쟁과 질병이라는 맬더스의 적극적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자발적 산아 제한이라는 예방적 통제의 결과다. 민주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희망없는 미래를 바라보는 청년층이 출산에 열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민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국민통합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 존망의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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