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새로운 종의 진화 보고서…영화 ‘프로메테우스’

입력 2012-06-18 08:17 수정 2012-06-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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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감독 이름이 내뿜는 ‘압도’가 우선 남다르다. 거장이란 타이틀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는 기획 단계부터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절대 흥분으로 몰아갔었다. 그리스 신화 속 타이탄인 ‘프로메테우스’는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 죄로 영원히 결박당해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헤라클레스가 구출해 주기 전까진.

리들리 스콧은 30여 년 전 자신이 출발시킨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이 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타이탄으로 착각한 채 이 시리즈의 기원을 쫒았고, 프리퀄(시리즈 이전의 스토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자신이 인간들에게 불을 전한 프로메테우스인 것처럼.

그렇다면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언급은 프리퀄로부터 출발해야 옳을 듯하다. 워낙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와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에 개봉 이후 상당히 고심했다. 결과는 프로메테우스는 ‘프리퀄이면서 프리퀄이 아닌’ 새로운 얘기란 점의 도달이다.

시작을 어떻게 풀 것인가. 이미 개봉돼 호불호의 선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의 희열을 불러 일으켰다. 개봉 전 언론에 공개된 그로테스크한 세트와 ‘인류의 기원’이란 근원론적 주제 의식은 일반적 영화 팬을 넘어 일종의 ‘외계 음모론’ 신봉자들조차 흥분시킬만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에이리언’의 프리퀄 논란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플롯에 대한 추측조차 불가능한 이 얘기를 거장 감독은 대자연으로부터 시작점을 끊었다. 영화 속 구체적 언급은 없지만 ‘기원’이란 단어에서 유추한 인류의 시작, 측 태초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 끝에 ‘스페이스 자키’(영화 속 주인공들은 ‘엔지니어’로 부름)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 엔지니어들이 지구에 있었는지는 나오진 않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지구에 존재했고, 그들의 DNA가 물속으로 녹아들면서 지구 생명체 탄생 시작과 결국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미 창조론은 종교적 관념에서 해석되는 세상이며 학문적인 관점의 진화론까지 뒤집는 상당히 도발적인 접근법이다.

스콧은 영화 개봉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간이 존재할 확률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사와 바티칸 모두 동의했다.” 과학적·종교적 관점 모두에서 그는 ‘프로메테우스’를 새로운 시작의 발화점으로 자신한 것이다.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당한 타이탄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하며 이 거장은 개인이 갖는 존재론적 접근법을 더해 단순한 영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여기까지만 언급해도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설명은 끝난다. 프리퀄 논란에 대한 종지부가 되는 것이다. 감독이 줄기차게 언급한 “(프리퀄이) 아니다”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첫 장면에서 엔지니어를 등장시키며 굳이 프리퀄 논란의 여지를 남겼을까.

첫 오프닝 시퀀스가 감독이 ‘프로메테우스’의 제작 이유를 함축적으로 담았다면, 영화 속 캐릭터들을 이끄는 러닝타임의 동력이 바로 엔지니어의 존재다. 영화를 보면 지구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메시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것이 ‘외계의 지구문명 창조설’을 증명한 것이라 굳게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의 원천은 엔지니어들이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에 있다. 여기서 “왜”에 대한 언급을 하며 스포일러를 제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럼 시선은 엔지니어에게로 간다.

스페이스 자키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는 스콧의 1979년 작 ‘에이리언’에 첫 등장한다. 그 유명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시작된 영화 말이다. 당시 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은 화물선 ‘노스트로모호’를 타고 ‘LV-426’이란 행성으로 향하던 중 한 거대 외계 우주선을 만난다. 그 우주선 안에서 죽은 화석 형태의 외계인 시체를 발견한다. 그 주인공이 스페이스 자키다.

30년 전 스콧 감독이 지금의 ‘프로메테우스’를 염두에 두고 ‘에이리언’에 아주 잠깐 스페이스 자키를 등장시켰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물론 그럴 의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프로메테우스’ 개봉 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에이리언’ 1편에 아주 잠깐 등장한 스페이스 자키를 이후 2편부터 4편 그리고 시리즈에서 파생된 여러 번외편에서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라고 의문을 가졌단다. 외계 문명 창조론에 귀 기울이는 그로선 스페이스 자키와 인류 문명의 근원 그리고 ‘에이리언’에 등장한 ‘페이스 허거’(우리가 아는 그 괴물)의 교집합이 보임으로써 ‘프로메테우스’를 시작할 수 있던 것이다.

제목과 스페이스 자키를 한 선에 놓고 보면 의미 있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간에게 불을 건넨 타이탄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뜯어 먹히는 형벌을 당한 점이나, 인간을 만들고 다시 그들을 파괴하기 위해 에이리언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설정, 여기에 그 에이리언에게 죽음을 당한 스페이스 자키의 운명은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든다.

교집합은 또 있다. 프로메테우스에는 하나의 이질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인조인간 ‘데이빗’이다. 에이리언 1편의 애쉬, 2편의 비숍, 그리고 3편을 건너 뛰어 4편의 에너리까지 그의 영화에선 인조인간 즉 앤드로이드 캐릭터가 항상 등장한다. SF영화의 교본인 그의 1982년 연출작 ‘블레이드 러너’는 아예 앤드로이드가 주인공이다.

이번 ‘프로메테우스’부터 전작의 모든 캐릭터까지 그의 앤드로이드 캐릭터들은 이중성을 갖는다. 자신을 만든 창조주(인간)에게 지배되는 모습과 함께 공격성을 숨기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로만 보자면 더욱 그렇다. 극중 엘리자베스와 찰리가 인간 창조주인 엔지니어들을 찾아가는 이유를 묻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은 인간을 창조한 이유를 묻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에 데이빗은 “그럼 나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만들 기술이 있으니”란 말에 데이빗은 “같은 답변을 듣는다면 어떻겠나”라고 말한다. 결코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작들로만 한정해도 스콧 감독의 작품 속 앤드로이드 캐릭터들은 상당히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특히 1편의 애쉬와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은 그 궤를 같이 한다. 애쉬가 화물선 노스트로모호 대원 몰래 에이리언을 지구로 이송하는 비밀 임무를 갖고 있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 역시 찰리에게 알 수 없는 실험을 통해 전체 스토리의 변곡점을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스콧 감독은 ‘기원’이란 키워드를 쫒으면서 생산과 파괴로 함축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앤드로이드 캐릭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결말이 더욱 충격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프로메테우스’는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영화다. ‘외계 문명 전파설’에 편승한 기존 여러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큰 차별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외계 문명설의 뒷받침용 정도다. 더욱이 스콧이 원했던 ‘인류의 기원’을 심도 있게 풀어내는 데도 상당히 버거워 보이는 결과물로 나와 버렸다.

하지만 그가 출발선을 끊은 ‘에이리언’ 세계관의 근원을 풀어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대체 ‘에이리언’이란 생명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온 것이며, 거대한 화석의 스페이스 자키는 누구인가” “두 가지를 함축한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이들 물음에 대한 해답만큼은 ‘프로메테우스’가 아주 명확하게 제시했다. 재미있는 점은 스콧 역시 외계 문명 전파에 기울어져 있으면서 진화론에도 상당히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이번 영화에 슬며시 끼워 넣었다. 스페이스 자키가 만든 에이리언의 모체가 어떻게 ‘페이스 허거’로 진화했는지 묘사한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런 범주에서 보자면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스위스 출신 작가 에리히 폰 다니켄이 주장했던 ‘외계 문명 전파설’ 위에 다윈의 진화론을 첨가한 일종의 새로운 진화 보고서가 아닐까.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의 프리퀄이면서 프리퀄이 아닌 새로운 얘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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