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호사다마(好事多馬)'를 꿈꾸며

입력 2012-01-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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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한국마사회장

대한민국에서 말이 제일 많은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 지 한 달이 됐다. 마사회에 와 보니 말들이 진짜로 많았다. 경마공원 안에는 경주용 말이 3500여두가 있고 승마용 말도 100두가 넘게 있으며 강아지만 한 관상용 미니어처 말에서부터 몸무게가 1t이 넘는 역용 말까지 종류만도 수십 종이 넘는다.

작년엔 구제역과 AI로 축산농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가축을 살아있는 채로 차가운 흙구덩이에 묻어야 하는 농민의 애끊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축산업도 축종(畜種)의 다각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말은 상대적으로 질병이 적은 가축이다. FTA 체결로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데 현행과 같이 특정 축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국제적 경쟁력뿐만 아니라 환경영향까지 고려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말산업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말산업은 ‘말의 생산·사육·조련·유통·이용 등에 관한 산업’을 의미한다. 말은 다른 축종과는 달리 살아있는 동물을 활용는 경마·승마·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고 식용도 가능하다. 세계 최대의 말산업 국가인 미국은 말 두수가 920만두, 말 관련 고용인구가 143만명, 경제기여효과도 126조원에 이르는 등 말산업은 헐리우드 영화산업을 능가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국내 말 사육농가는 전체 축산농가의 2%에 불과하지만 2008년 기준으로 경주마 1두의 평균가격이 3300만원을 기록하는 등 투자에 비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말은 소와 같은 반추동물과 달리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분뇨 배출량도 월등히 적다.

마분(馬糞)은 경도가 높아 버섯재배에 퇴비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환경오염의 우려도 훨씬 덜하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중국이 말산업에서도 무한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경마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경마가 시작돼 문호가 개방되면 경주마 수요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의 부유층에서만 즐기던 승마 역시 경제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대부분의 승용마를 해외에서 수입할 것이다. 지난 11월 말레이시아 경주마 수출은 한국이 말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됐다는 의미와 함께 향후 세계 최대의 말 수출시장으로 부상할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처럼 말산업은 여러 면에서 기존 축종을 대체할 발전가능성이 큰 새로운 산업이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말산업은 무엇보다 시장형성이 관건이다. 말의 수요를 늘이기 위해서 경주용 말 생산을 승용마 생산으로 확대하고 말의 식용과 말기름, 말뼈 등의 부산물을 활용한 관련 산업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향후 4∼5년 내에 생산농가수가 현재 1900농가에서 5000농가로, 사육두수도 3만두에서 10만두 수준으로 규모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올레길’, ‘둘레길’과 같이 기존 임도를 활용한 ‘말 산책로’를 조성해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승마인구 증가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필요하다면 마사회가 직접 말 체험장을 운영하면서 인근의 농어촌형 소규모 승마장들에 수의(獸醫), 장제(裝蹄)와 같은 다양한 기술지원을 하고 주말에는 제한적으로 경마를 중계하여 여기에서 발생되는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말산업 클러스터’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말산업 인프라를 구축할 수도 있다.

한때 경마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 마사회가 복마전(伏魔殿)으로 불렸다. 복마전의 마(魔)는 마귀를 뜻하는데 음이 말의 한자음인 마(馬)와 같다 보니 그렇게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마전은 말이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복마전의 마를 마귀에게 되돌려 주고 오히려 호사다마(好事多魔)와 같은 말에 마귀를 대신해 말이 한 자리 차지했으면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馬), 즉 말로 좋은 일을 많이 만들고 좋은 일에는 항상 말이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자유자재로 말을 타던 기마민족이었다. 비록 오랜 세월동안 기마민족의 기상을 잊고 살았지만 말 문화의 복원과 말산업 육성을 통해 그 기상을 일으켜 한반도가 다시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장태평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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