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뷰-포인트]경영이란 사람 마음을 얻는 것

입력 2011-11-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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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샘표의 사훈은 인화, 신용, 봉사다. 회사가 모양새를 갖춰갈 무렵 아버지께서는 여러 권의 책을 살펴가며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이 세 가지를 사훈으로 삼으셨다.

인화, 신용, 봉사는 경중을 따지기도 어렵고 떼려야 뗄 수 없지만 각각이 갖는 두드러진 의미는 있다. 먼저 신용은 아버지 당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측면이 강하고 인화는 직원들에게 강조한 덕목이었으며, 봉사는 샘표라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길이었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평소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인화’였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원만한 인간관계가 기본이라는 것이 아버지 생각였다.

내가 행정조정실장으로 승진했을 때 당신께서 나에게 당부하신 말씀도 사람에 대한 소중함, 곧 인화다.

“승복아. 어느 조직이든 발전의 원동력은 사람이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원만한 인간관계가 기본인 것처럼 정부도 마찬가지다. 인화야 말로 조직을 만드는 첫 출발이요, 번영의 지름길이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내가 샘표 직원을 너나 동생들과 동일한 가족으로 생각하듯 너 역시 부하 직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대해라. 그래야만 네 뜻을 펼칠 수 있을게다.”

이 말씀을 비롯해 평소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을 되새겨보면 아버지는 평등을 지향하고 사람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분이었다.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지는 오류에 빠지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간장에도 등급이 없다고 강조했던 것처럼 사람에도 등급이 없다고 강조하며 직원을 매우 귀히 여겼다.

6.25 한국전쟁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점령되어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아버지는 갖고 있는 돈과 은행예금을 모두 찾아서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살아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전쟁으로 인해 4년 간 샘표에 들인 고생과 노력의 결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서 아버지가 먼저 챙긴 건 회사가 아니라 직원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쟁 후에 전 직원이 다시 모여 불에 탄 공장을 재건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회사가 안정을 찾아간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식당을 지어 직원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 일이었다. 얼마 후에는 장 만드는 일이 땀을 무척 많이 흘리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목욕시설을 설치해 샤워를 하고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멀리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들을 위해 무료로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지금은 생산 현장의 시설들이 워낙 발달한데다 직원을 위한 복지 개념이 정착되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식당과 목욕시설, 셔틀버스를 갖춘 공장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이런 시설들은 돈이 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라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이와 같은 정책들을 펼쳤는지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경영 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간장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버지는 직원이 최선을 다해 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하였고 그 기본은 존중이었다. 그 존중의 표현이 복지나 급여 등의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라 보여진다.

이런 기반 위에서 성장한 샘표이기에 샘표의 정신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제까지 샘표는 감원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을 내보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또 초창기에 군대에 다녀오면 반드시 다시 채용한 정신을 살려 지금도 정년퇴임을 한 이들 중 본인이 일할 의사가 있고 그 뜻이 회사와 맞으면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스페셜리스트 중에는 사무직원도 있지만 생산 현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지게차는 숙련자보다 기운 센 젊은이들이 더 잘하는 일인데 굳이 정년이 지난 직원을 다시 고용해서 몇 배의 임금을 지급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를 두고 ‘샘표 대표들은 사업가라기보다 학자가 어울린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사업가는 능력있는 직원을 오래 곁에 두는 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적어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직원들도 한 기업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요즘은 모든 것이 가벼워져 회사는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해고 하고 직원들도 조건을 따라 회사를 쉽게 떠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오래 사귀고 깊이 사귀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더욱 그립다. 지금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소중한 걸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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