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전국이 '가축들의 무덤'…대한민국 삶을 바꿔 놓았다

입력 2011-02-10 11:15 수정 2011-02-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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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의 시작과 끝은..대한민국 삶을 바꿔 놓았다

‘축산업 마비, 청와대 긴급장관회의, 동물원 폐쇄, 휴교·개학 연기, 학교급식 차질, 족발판매점 폐업, 설 연휴 고향 방문 자제, 세시 풍속놀이 취소, 유정복 장관 사의, 316만 마리 살처분, 우유대란, 화훼농가 손실….’

구제역이 대한민국에 가져다 준 결과들이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구제역은 지난해 11월 말 북한이 연평도 포격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하며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직후 우리나라에 재앙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해를 넘기며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은 정부의 초동 대응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정부는 뒤늦게 살처분은 물론 예방백신 접종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구제역 재앙은 우제류 가축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집요하게 파고들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국내 종축자원을 관리하는 핵심 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을 초토화시켰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부산까지 침투했다. 한마디로 ‘구제역 대재앙’이다.

구제역 대재앙은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에 있는 돼지 사육농장 2곳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반경 3km내 모든 우제류 가축 2만3000여 마리를 살처분하고 ‘주의’단계의 위기경보를 발령하며 구제역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하루 뒤에는 한우농가마저 구제역에 전염됐다. 첫 발생지에서 8km, 34km 떨어진 한우농가에서 각각 구제역이 발생한 것. 구제역 발생 4일 만에 5만3000마리를 살처분했다.

12월3일에도 안동에서 12건이 추가로 발생해 총 17건으로 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최초 발생지점으로부터 10km인 경제지역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제역은 12월5일 처음으로 안동 방역망을 뚫고 경북 예천으로 확산됐다. 12월22일에는 강원도 평창·화천·춘천마저 삼켰다.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번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전국 확산을 막기 위해 소에게 예방 백신을 접종키로 했지만 구제역은 상당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첫 발생 20여일 만에 25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처분됐고, 보상금도 2700억원이 사용됐다.

명품 한우도 구제역의 재앙을 피할 순 없었다.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로 확산된 구제역은 12월23일 우리나라의 대표적 한우 산지인 횡성과 원주마저 삼켰다.

구제역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에도 세를 확장, 대규모로 새끼 돼지를 길러 판매하는 경북 영천 종돈장까지 감염시키며 본격적인 전국 확산 조짐을 보였다. 같은 날 인천 강화에서도 발생, 구제역은 경북 경기 강원 인천 등 4개 광역자치단체로 번졌다.

유례없는 한파는 자식 같은 살처분 대상 소가 주사를 맞은 지 2분 만에 털썩 주저앉고, 5분 만에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농장주들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구제역이 5개 시·도 29개 시·군 등 사상 최악으로 번져나가자 정부는 12월30일 가축질병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끌어올리고, 범정부 차원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렸다.

하지만 구제역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새해로 접어들면서 구제역은 전남·북과 경남,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퍼졌다. 보상금은 7500억 원 넘어섰고, 농가 피해액은 9700억 원에 달했다.

구제역은 발생지역은 40여 일만에 6개 광역자치단체 46개 시·군으로 늘어났다. 기초자치단체의 20%가 구제역에 감염된 셈이다.

구제역은 이명박 대통령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 1월6일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구제역은 대통령의 지시를 비웃기라도 하듯 1월8일 동양 최대 목장으로 알려진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삼양목장마저 손아귀에 넣었다.

3일 후에는 우량 한우품종을 개발·보급하는 경북 축산기술연구소마저 뚫었다. 구제역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풍속도도 바꿨다. 구제역 전염을 우려해 각 지자체는 물론 고향의 부모들이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먼저 세상을 등진 아버지 묘소 옆에 모시지도 못하는가 하면,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

너무나 답답해서였을까. 전체 소·돼지의 85%를 잃은 이인재 파주시장은 1월26일 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방역시스템 개선을 간곡히 요청하기도 했다.

이틀 후에는 결국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구제역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 장관은 “현재의 구제역 사태를 조속히 종식시키고 모든 상황을 말끔히 수습한 다음 깨끗이 물러나겠다. 결코 장관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의 사의표명에도 구제역은 2월7일 단 한 차례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부산까지 확산되며 끝까지 유 장관의 심기를 건드렸다.

8일 현재 9개 시·도, 69개 시·군·구, 153곳을 집어삼킨 구제역은 지금도 발생하지 않은 지역을 향해 여전히 발톱을 세우고 있다. 전국 5664농가 316만4452마리의 가축을 살처분·매몰시키고, 2조 원가량의 예산을 빼앗았음에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새다.

대한민국에 드리운 구제역 재앙의 그늘이 언제쯤 물러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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