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의지와 실천의 문제다

입력 2010-10-28 13:20 수정 2010-10-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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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유통경제부장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번 세기 들어서다. 공교롭게도 한국사회에서도 보편성의 가치가 힘을 소멸하고 개별성의 가치가 부상할 즈음이다.

그녀는 철학자로서의 삶의 후기에 위대한 역작을 준비했다. <정신적 삶(The Life of Mind)>라는 제목하에 ‘사유(thinking)’와 ‘의지(willing)’, ‘판단(judging)’의 세부분에 대한 분석이다. 생전에 ‘사유’편과 ‘의지’편은 완성됐지만 ‘판단’은 미완으로 남았다.

한나 아렌트는 <정신적 삶>에서 칸트 이후로 하이데거까지 이어지는 내려온 사상과 궤를 같이 했지만 이들 사상의 핵심인 보편적 이성, 실천이성은 거부했다.

인간의 행위는 실천이성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의 사유와 의지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있는 사유와 의지의 다양성과 차이가 사회적 소통과 합의를 통해 공동의 행위로 나타난다.

또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정치인데 그녀에게 있어서 정치는 곧 사교(성)의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에 합류하지 못하는 개별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런만큼 각 개별자는 양심이나 도덕성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 역시도 개별자들의 의지가 어떻게 실천되느냐에 달려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화두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유통 대기업들은 이에 역행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SM(기업형 수퍼마켓) 진출 강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은 대기업집단 및 경영진의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 대기업들은 이런 요구를 외면한 채 꼼수까지 부려가며 골목상권 진출을 강행하고 있다.

롯데,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들은 최근 서울에서만 노원구 상계동과 대학로, 용산구 문배동 등에서 SSM 개점을 강행했다. 지역 상인들과의 충돌은 당연지사다. 상계동에서는 지역 상인들이 불침번까지 서면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을 막고 있다. 몰래 물건을 들이려던 매장측과의 충돌도 잦다.

이달들어 대학로와 원효로에 점포를 연 롯데슈퍼는 위장개업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롯데슈퍼는 개점 전 공사를 하면서 대학로점에서는 ‘피자가게’, 원효로점은 ‘스시뷔페’가 입점한다며 플랭카드를 내걸었다. 소위 ‘리뱃지(rebadge)’ 전략인데 유통업계 내에서도 대기업의 사업전략치고는 너무 치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비난에도 대기업들의 SSM 진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SM법으로 불리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의 처리 지연은 대기업에는 좋은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사실 기업이 사업을 하겠다는 데 막을 명분은 없다. 정치권에서 법을 개정해서라도 대기업의 SSM 진출을 규제하겠다고 하는 데 몇시간 전 합의한 내용도 깨버리는 게 현실이고 보면 개정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 개정을 통한 규제는 또 다른 역차별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도 문제다.

해답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찾을 수도 있다. 기업의 경영자가 더이상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오너 기업의 특성상 경영자의 한마디가 바로 경영전략이나 정책이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회적 합의라는 측면에서도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와 중소상인들까지 모두가 다 하지말라고 하는 데 이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말이다.

이 합의를 무시하고 골목상권까지 넘보면서 한쪽에서 상생을 외치는 것은 맞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제와도 거리가 멀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21세기 들어서 국내에서 주목받는 것을 단순히 우연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통과 합의를 통해 사교의 장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이런 합의를 외면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킬지는 결국 개별자(경영자)의 의지와 실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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