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간선거 '블루웨이브(민주당 압승)' 후폭풍이 국내 증시를 강타하며 코스피 5000선이 시험대에 올랐다. 6일 코스피는 개장 2분 만에 8% 넘게 폭락해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중단)가 발동됐고, 장중 4911.28까지 밀리며 올해 2월 6일 이후 9개월 만에 5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장 막판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5000선을 간신히 사수하며 5059.69 마감했지만, 시장의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9일 본지가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본부장에게 긴급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이들은 이번 폭락장의 본질을 펀더멘털 붕괴가 아닌 수급 왜곡이 부른 과매도로 규정했다. 미국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우려가 촉발한 불안 심리에 글로벌 헤지펀드의 강제 청산 물량이 쏟아지며 낙폭을 키웠을 뿐, AI 반도체 성장 스토리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리서치 수장들은 6일 한국 증시가 유독 가파르게 무너진 배경으로 미국 주지사 선거 결과와 글로벌 펀드의 포지션 청산을 지목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데이터센터 건설 상위 14개 주 가운데 텍사스·조지아·오하이오·아이오와·네바다 등 핵심 지역의 주지사가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인허가 지연 리스크가 불거졌다"며 "데이터센터에 메모리와 장비를 납품하는 공급망 위주로 매물이 쏟아지다 보니 반도체·전력기기 비중이 높은 한국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기계적 투매가 기름을 부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나스닥 지수의 200일선 이탈과 변동성지수(VIX) 급등이 알고리즘 매도를 자극했고, AI 비중이 높던 헤지펀드들의 연쇄 청산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이끄는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 펀드 청산 등 글로벌 헤지펀드의 손절매와 연말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겹치며 주가가 본질가치 밑으로 추락하는 언더슈팅이 나타났다는 것이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AI리서치센터장과 양지환 센터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주가가 최악의 감익 시나리오까지 선반영한 극단적 저평가 구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지환 센터장은 "자기자본이익률(ROE)·주가순자산비율(PBR) 관계식으로 산출하면 현재 코스피는 향후 12개월 선행 이익이 시장 예상치보다 38~49% 급감하는 상황까지 반영해 빠진 상태"라고 짚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도 "코로나 팬데믹 당시 고점 대비 하락률보다도 더 크게 떨어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황 역시 흔들림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상 민주당도 데이터센터 확충을 가로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연주 센터장은 "메모리 공급 부족과 높은 장기 공급 계약 비중 덕분에 최소 1년간은 실적 가시성이 뚜렷하며, 2027년 가동 예정인 데이터센터 물량도 규제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조수홍 본부장 역시 "미국 내 건설이 늦어져도 동맹국이나 아시아 데이터센터를 통한 연산력 확보로 메모리 수요는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발표에서 확인됐듯 메모리 공급 부족 장기화 기조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정책 입법화 여부와 국내 수급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27~2028년 실제 데이터센터 투자가 멈출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며, 현재 국내 증시에 뚜렷한 매수 주체가 없어 5000선 지지 여부를 냉정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영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제 법안 제정과 빅테크의 설비투자 축소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연말까지 박스권 기간 조정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주 증시는 당장 9일부터 3개월간 시행되는 정부의 '증권사 신용융자 담보비율 140% 유지 의무 면제' 조치로 한숨을 돌릴 전망이다.
황승택 센터장은 "담보비율 의무 면제는 개인 반대매매에 따른 연쇄 하락 압력을 완충해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이란 전쟁 조기 종식 요구로 국제유가와 미 국채 금리가 하락세를 타면서, 빅테크의 자금 조달 비용 감소와 잉여현금흐름(FCF) 적자 우려 완화라는 숨은 호재가 부각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심리를 반전시킬 최대 분수령은 17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다.
유종우 본부장은 "당선자 발언에 따른 심리 위축 국면인 만큼 17일 엔비디아 실적과 가이던스 유지 여부가 투심 회복의 핵심”이라고 했다.
황승택 센터장은 앤트로픽 기업공개(IPO) 수요예측과 코어위브·네비우스 등 데이터센터 기업 실적을 주요 변곡점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투매에 동참하기보다 '빚투 축소'와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코스피 5000선 부근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낙폭 과대 우량주와 에너지저장장치(ESS)·전력기기를 분할 매수하되,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헬스케어·금융(은행·보험)·2차전지 등 비(非) AI 및 정책 수혜주로 무게중심을 분산하라는 조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