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목적은 치이카와…‘토벌대’의 일본행 [해시태그]

입력 2026-11-0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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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도쿄행 항공권. 그리고 소중한 ‘토벌지도’. 이번 여행의 완벽한 준비물이죠.

이번 여행을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관광지나 맛집이 아닙니다. 치이카와파크 입장권과 굿즈 발매 일정, 도시별 치이카와랜드의 위치죠. 여행 날짜와 숙소, 이동 경로까지 모든 것은 오로지 일본캐릭터 ‘치이카와’ 중심인데요.

팬들은 굿즈를 찾아 매장을 도는 일을 ‘토벌’이라고 부릅니다. SNS에는 도쿄·오사카·후쿠오카의 매장을 순회한 일정과 구매한 ‘전리품’을 공개하는 토벌기가 잇따르는 중이죠.


(출처=‘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
(출처=‘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포스터)


치이카와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2020년 엑스(X·옛 트위터)에 연재한 짧은 만화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본어 제목인 ‘なん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난카치이사쿠테카와이이야츠)’는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라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이를 줄인 ‘먼작귀’로도 불리는데요.

작품 속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풀을 뽑거나 위험한 괴물을 토벌해 받은 보수로 생활합니다. 팬들은 이 설정을 현실의 굿즈 구매로 옮겼죠. 사고 싶은 상품은 ‘토벌 목표’, 구매에 성공하면 ‘토벌 완료’, 품절로 사지 못하면 ‘토벌 실패’가 되는데요. 여러 매장을 함께 도는 팬은 ‘토벌대’나 ‘토벌단’, 구매한 상품은 ‘전리품’으로 부르죠.

한국 6곳과 일본 14개 지역의 판매처 42곳을 정리한 팬들이 만든 토벌 지도도 등장했습니다. 상설점과 팝업스토어, 추첨식 상품인 쿠지 판매처를 골라 볼 수 있는데요. 다른 팬 사이트 ‘먼작귀 마켓 레이더’는 일본 공식 온라인 매장을 3분마다 확인해 신상품과 재판매 일정을 한국어로 제공하죠. ‘토벌 목표’와 ‘토벌 완료’를 표시하고, 구매 실적을 ‘토벌 영수증’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기능도 갖췄습니다.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토벌 여행의 중심지는 매장과 체험시설이 밀집한 도쿄인데요. 치이카와랜드 상설점은 도쿄·오사카·후쿠오카·교토·나고야·삿포로 등 16곳에서 운영되고 있죠.

도쿄 이케부쿠로에는 치이카와파크와 치이카와랜드, 치이카와 레스토랑, 치이카와 라멘 부타가 모여 있습니다. 하라주쿠·오모테산도에서는 치이카와랜드와 치이카와 베이커리를, 신주쿠에서는 치이카와랜드와 마지카루 치이카와 스토어를 함께 방문할 수 있죠. 도쿄역과 스카이트리타운 소라마치에도 치이카와랜드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매장 위치만 확인한다고 여행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닌데요. 치이카와파크는 매월 15일 정오부터 두 달 뒤 한 달 치 입장권을 선착순으로 판매합니다. 파크 안에 굿즈 매장이 있어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면 상품도 살 수 없는데요. 치이카와 레스토랑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치이카와 베이커리도 구매권이 포함된 우선입장권을 판매하죠.

오사카에서는 우메다의 치이카와랜드와 마지카루 치이카와 스토어, KITTE 오사카의 치이카와 베이커리를 묶어 돌아볼 수 있는데요. 신사이바시 파르코에는 치이카와랜드와 라멘 부타가 있죠. 교토 후시미이나리의 모구모구혼포, 오타루의 모구모구혼포, 오키나와의 시사노 오미야게야상은 지역 특색을 살린 한정 상품을 판매합니다.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문제는 본토에서도 쉬이 구할 수 없는 귀한 몸이라는 건데요. 실제 도쿄 이케부쿠로 일대 토벌에 나선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30대 A 씨는 부푼 마음과 달리 토벌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살 수 없는 한정판 굿즈가 목적이었지만, 원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는데요. 실제로 이케부쿠로 매장에는 일본 팬들은 물론 한국, 중국 팬들까지 ‘오픈런’에 열성이었습니다. A 씨는 “최애인 ‘쿠리만쥬’를 원했지만, ‘모몽가’만 가득한 매대만 보고 왔다”며 “입고 시점이 제각각인 데다 업자들이 쓸어가는 모습에 허탈했다”고 한숨을 지었죠.

치이카와 굿즈를 향한 ‘토벌 행렬’은 서울 용산에서도 밤새 이어졌습니다. 2024년 12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치이카와 팝업스토어에는 열흘간 3만 명 이상이 방문했는데요. 개점 2시간 만에 입장 대기 번호가 1000번을 넘었고, 2026년 2월에는 국내 첫 정규 매장인 치이카와샵 아이파크몰 용산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정규 매장 개점 이후에도 대기 행렬이 이어지자 매장은 사전 예약과 현장 접수를 번갈아 적용했죠. 설사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건 아닌데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입고되는 상품 한 박스는 1~2분 만에 모두 판매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죠.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치이카와 매장 전경 (독자 제공)


치이카와의 인기를 귀여운 외형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캐릭터들은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더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데요. 치이카와는 시험에 거듭 떨어지고, 하치와레는 문도 없는 동굴에서 생활하죠. 아르바이트 자격증을 딴 시사도 일자리가 사라질지 불안해합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노동과 시험, 주거와 고용 불안을 겪는 설정이 성인 팬의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데요. 귀여운 그림체로 현혹돼 어둡고 섬뜩한 내용을 마주하는 루트죠. 그런데 이런 안쓰러움이 굿즈 구매로 이어지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 중인데요.

짧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SNS에 퍼지기 쉬운 점도 팬층을 넓혔습니다. 숏폼에 너무도 어울리는 이야기들과 ‘빈틈’을 노린 팬들의 해석에 열성적인 소비가 더해졌죠.


(출처=치이카와 포켓 굿즈 스토어 홈페이지 캡처)
(출처=치이카와 포켓 굿즈 스토어 홈페이지 캡처)


팬덤의 규모는 극장에서도 확인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9월 30일 개봉한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이달 5일까지 누적 관객 263만9794명을 기록했죠. 6일 오전 9시 기준 예매율도 23.0%, 예매 관객은 6만3000여 명으로 전체 영화 가운데 1위였습니다.

관객층의 중심은 20·30대입니다. CGV가 10월 30일 기준으로 집계한 연령별 비중은 20대가 41%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21%로 뒤를 이었는데요.

SNS에 올라오는 토벌기는 단순한 구매 후기가 아닙니다. 어느 매장을 어떤 순서로 돌았는지, 몇 시에 도착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원하는 캐릭터가 어느 지점에 남아 있었는지, 입장권과 정리권은 어떻게 받았는지가 함께 담깁니다. 토벌에 실패하면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 과정까지 공개하죠.

한 사람의 토벌기는 곧 다른 팬의 여행 공략이 되는데요. 이를 참고한 팬들은 목표 상품을 정해 항공권과 입장권을 예약하죠. 그렇게 얻은 전리품이 다시 SNS에 공유되면서 또 다른 토벌을 부르는 순환이 이어집니다.


(출처=토벌수첩 캡처)
(출처=토벌수첩 캡처)


희소성은 토벌 열기를 더 키우는데요. 리셀 플랫폼 크림이 지난달 21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1~14일 치이카와 관련 검색량은 9월 같은 기간보다 1304% 증가했습니다. 일본 패션 브랜드 9090과 협업한 우사기 키링은 최고 44만원에 거래됐는데요. 발매가의 약 16.7배죠.

항공료와 숙박비까지 더하면 일본 토벌이 국내에서 재판매 상품을 사는 것보다 반드시 저렴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정길 자체가 팬 활동인데요. 입장권을 확보하고 여러 매장을 돌며 목표 상품을 찾아낸 뒤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일까지 치이카와를 즐기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죠. 오로지 치이카와를 위한 해외 토벌기, 앞으로도 더 빼곡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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