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단에 오른 기업들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25배다. 문제는 하나의 잣대로 성격이 다른 기업들을 줄 세운다는 데 있다. 철강과 화학처럼 대규모 설비를 보유하고 업황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는 업종은 자산가치에 비해 낮게 평가받기 쉽다. 반면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나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기업은 경영진의 자본 배분 능력을 따져야 한다. 같은 저PBR이라도 원인은 다르다.
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을 적용한다고 문제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업종 전체가 저평가된 경우 상대적으로 PBR이 높은 기업도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수익성과 성장성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 기업이라도 업종 내 순위가 높으면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보다 상대적인 위치에 초점을 맞춘 줄 세우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에 압박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3년간 업종별 PBR 하위권에 머문 기업을 공개하고 개선계획을 제출하면 원칙적으로 1년간 공표를 면제한다. 6년 이상 저평가 상태가 이어지면 계획을 내더라도 명단에 포함한다. 당초 요건을 충족한 185곳 중 34곳은 개선계획을 공시해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은 성과지만 계획서 제출이 곧 기업가치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개선계획을 제출한 기업 중에는 저평가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 찾으면서 구체적인 개선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곳도 있다. 경영진 보수를 기업가치 개선 성과와 연동하는 데도 소극적이었다. 기업가치 제고가 경영 혁신보다 공시를 위한 서류 작업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도 주가 누르기 방지와 중복상장 규제 등 기업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규제와 공시만으로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는 어렵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에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일반주주를 외면한 자본 배분, 경영권에 대한 견제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기업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경영진이라면 더 나은 전략을 제시하는 외부 투자자의 도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투기적 인수와 단기 차익 추구를 막을 장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경영권 보호가 비효율적인 경영까지 지켜주는 방패가 돼서는 곤란하다.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와 이사회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개선계획의 이행 성과를 검증하고 경영진 보수를 자본효율성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뿐 아니라 지속적인 이익 창출 능력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단기 주가 부양보다 기업의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반도체 호황과 글로벌 유동성이 지수를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기업의 체질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국내 증시의 도약은 기업을 평가하고 견제하는 시장의 힘에 달렸다. 저PBR은 기업에 찍는 낙인이 아니라 시장이 보내는 경고여야 한다. 저평가의 원인을 외면한 채 이름만 공개해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