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김영용 칼럼] 대법관 임명권, 책임의 경계 따져봐야

입력 2026-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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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제청권·대통령 임명권 갈등
사법부 구성·운영은 부처 소관 사항
國調보다 순리적 임명 방법 찾아야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대통령이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했지만, 대법원장이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여 임명 절차가 중단된 상태이다.

대법관 임명 절차는 헌법 제104조 제2항에 규정되어 있다. 즉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이 조항의 문구에만 의존한다면 논란의 해결은 난망하다.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문구를 각 부처의 동등한 권한으로 해석하면 언제든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미리 합의하여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공식 절차가 아니므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때에는 문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참고할 수 있다. 민주정은 귀족과 일반인들이 군주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군주가 가진 권한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전된 정체(政體)이다. 먼저 군주가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자원이 필요할 때 귀족들에게 부담을 요구하자 이들이 모여 논의한 곳이 상원이다. 다음으로 같은 이유로 일반인들이 모여 논의한 곳이 하원이다. 그런 과정에서 군주의 권한이 귀족과 일반인을 비롯한 다중에게 옮겨지면서 민주정이 발전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지금 영국의 정체는 형식적 군주정과 실질적 민주정의 혼합정체로서, 군주인 왕은 국정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하원이 신임하는 의원을 총리로, 총리가 제청한 각료를 임명․승인하는 등의 국사 행위를 한다. 왕이 국정 행위를 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므로 국사 행위만 한다. 따라서 영국 왕은 국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일본도 형식적 군주정과 실질적 민주정의 혼합정체지만 천황이 국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국사 행위만 하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일본 헌법 제4조 제1항은 “천황은 이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하며 국정에 관한 권한은 가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7조는 국사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혼합정체에서도 왕이나 천황은, 미약하지만, 총리와 내각을 암묵적으로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정과 국사의 총책임자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행위와 국사 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되어 잘 형성된 관례나 관습도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위에서 기술한 정체의 변천 역사에 비춰보면, 대통령의 국정은 국가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 담긴 적극적 통치 행위이고, 국사는 특정 사안을 헌법적으로 마무리하는 소극적 행위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과 국사를 적극적 개입과 소극적 개입에 따른 책임의 경중과 삼권분립 원칙을 참고하여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특정 행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은 어렵다. 우선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은 국정 행위에 대해서는 실질적 책임을 진다. 즉 대통령은 외교, 국방, 치안, 경제, 문화 등, 장관이 관장하는 모든 분야의 국정 행위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진다(물론 이 중에는 정부가 관여할 필요 없는 분야도 있다). 그래서 대통령 지지도는 이런 분야의 국정 성과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구성 및 운영은 각 부처의 소관이다. 따라서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의 간접적 책임은 있지만, 직접 책임은 없다. 실제로 국민은 국회와 사법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며, 그런 문제가 대통령 지지도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 제104조 제2항이 규정하는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은 헌법적 완결을 위한 국사 행위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비춰보면 이는 더 뚜렷해진다. 사법부가 선출 권력은 아니지만, 입법부와 행정부를 헌법에 따라 통제하는 기관이므로 대법원의 구성과 운영은 기본적으로 사법부 소관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은 국사 행위에 가깝다.

결국 이 문제는 헌법 제104조 제2항의 해석 문제로 귀결된다. 그 해석에 있어서 언어는 이미 정해져 고유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선호나 정신적 구성 등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러한 선호나 정신적 구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점,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언어로 표현되는 지식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정신에서 생겨 소통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대법원장 탄핵과 국정조사 등을 거론하기 전에 순리적인 임명 방법을 찾는 것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태도일 것이다. 그 첫 단추는 대통령의 국정과 국사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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