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양 6대주에 북극까지”…직접 겪은 항해 경험, 다음 운항의 밑거름

8월 31일 밤에서 9월 1일로 넘어가던 북극해. 부산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던 팬스타 아크로호 앞을 유빙이 가로막았다. 해가 지면서 얼음의 크기를 눈으로 가늠하기도 어려워졌다. 수면 위로 드러난 얼음 아래 얼마나 큰 덩어리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선원들은 무리하게 전진하는 대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1등 항해사이자 운항 감독으로 배에 오른 박지정 팬스타 부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선원으로서는 항해를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고, 운항 감독으로서는 그 이후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했다.”
새벽 2시께 해가 뜨자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바닷길이 드러났다. 선장과 항해사, 기관장이 머리를 맞댄 끝에 기다리기로 했던 배는 속도를 낮춰 얼음 사이를 조금씩 빠져나갔다. 박 부장에게 50일간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에서 가장 깊이 남은 순간이다.
22일 해양수산부가 마련한 간담회에서는 북극항로를 직접 다녀온 이들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거리와 운항기간 단축이라는 성과 뒤에는 유빙 앞에서의 망설임, 추위에 예민해진 기계, 잠들지 못하는 선원들의 밤이 있었다.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8월 22일 부산을 출항해 영국과 네덜란드, 폴란드를 거쳐 10월 11일 돌아왔다. 왕복 여정은 49일 10시간. 국내에서 흔치 않은 북극항로 왕복 경험을 쌓은 이들에게는 익숙한 바다의 상식만으로 풀기 어려운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북극에서 오로라를 보면 사진도 찍을 수 있겠다는 설렘이었다. 그러나 유빙을 맞닥뜨리자 생각이 달라졌다. 얼음을 피하느라 계획한 항로를 벗어나 돌아가는 일이 이어졌다. 빌키츠키 해협에서는 밀집도가 높지는 않아도 충돌하면 위험할 만큼 큰 유빙을 만났다.
박 부장은 앞서 가던 중국 선박들의 움직임도 살폈다. 선박자동식별장치 정보를 통해 어느 구간에서 우회하는지 확인하고 선장과 육상 지원팀에 공유했다. 낯선 바다에서는 먼저 지나간 배의 항적도 길잡이가 됐다.
사람만 긴장한 것은 아니었다. 저온 환경에서는 배의 기관도 평소와 다르게 반응했다. 연료와 윤활유가 순환하는 계통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 선원들이 상태를 살피고 보온·가열 조치를 해야 했다. 일부 통신과 위치정보 수신이 일시적으로 끊기기도 했다. 여러 위성통신 수단을 준비해둔 덕분에 비상 연락은 유지할 수 있었다.
박 부장은 “극지 환경에서는 사람도 예민하지만 기계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관부에서는 실시간으로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당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럽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렸다. 유빙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눈보라와 거친 바다가 배를 흔들었다. 비가 눈으로 바뀌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외부 갑판이 얼었다. 선장은 안전을 위해 갑판 출입을 통제하고 외부 작업을 최소화했다. 북극해를 빠져나온 뒤에도 태풍에서 변한 저기압을 피해 항로를 바꿔야 했다.
뜻밖의 복병은 시차였다. 고위도에서는 짧은 거리를 이동해도 경도가 크게 달라진다. 배의 시계를 거의 매일 한 시간씩 앞당겨도 몸은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오후 3시에 해가 지고 새벽 2시에 다시 뜨는 환경에서 선원들의 생활 리듬이 흐트러졌다.
박 부장은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승선한 분들이 모두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잠들어야 할 때 잠이 오지 않고, 일해야 할 때 피로가 밀려왔다. 원양항해를 해온 선원들에게도 북극의 시차는 낯선 경험이었다.

권 교수는 연수원이 2012년부터 극지 운항 교육을 준비했지만 실제 북극항로를 항해한 실무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운항 경험을 접해도 세부 자료까지 공유받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승선은 오랜 교육·연구의 빈칸을 채울 기회였다.
그는 “드디어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귀항길에서는 예상보다 유빙을 적게 만났다. 얼음 분포를 보여주는 해빙도와 기상정보를 미리 분석해 항로를 조정한 덕분이었다. 권 교수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는 다행이었지만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안전한 귀항에는 출발 전의 판단도 작용했다. 팬스타 내부에서는 월말 수출 물량을 더 싣기 위해 출항을 8월 29일로 늦추자는 의견이 있었다. 운항 담당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갈 때는 얼음이 녹는 시기지만 돌아올 때는 다시 어는 시기여서, 출항을 늦추면 귀항길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결국 8월 22일 출항했고, 유럽에서는 마지노선으로 잡았던 9월 20일보다 하루 앞서 귀항길에 올랐다. 팬스타 측은 배가 통과한 뒤 일주일 만에 해당 해역에 유빙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더 많은 화물을 싣는 것과 안전하게 돌아올 시간을 확보하는 것 사이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50일을 다녀온 박 부장이 다음 항해를 위해 가장 강조한 것은 선원 교육이었다. 장비를 갖추는 데 더해 그 장비를 다루고 낯선 상황에서 판단할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빙도 속 표시가 실제 바다에서 어떤 모습인지, 유빙 앞에서 언제 기다리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직접 겪으며 쌓이는 지식이었다.
그는 선원들이 경험을 이야기할 때 쓰는 “5대양 6대주를 다 가봤다”는 말에 이제 한 곳을 더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저도 5대양 6대주를 가봤지만 이번에 북극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이런 경험과 생각의 폭을 넓힐 기회가 대한민국 선원들에게 더 많이 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