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산은 커지는데…지원 성과·제도 개선은 ‘제자리’ [영화 예산의 빈틈]

입력 2026-10-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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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예산 지원 460억원…개봉 성과 검증 과제
선착순 지원 논란 속 지역영화 지원사업 폐지
내년 영화예산 1673억원…홀드백 결론 지연

▲극장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모습 (이투데이DB)
▲극장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모습 (이투데이DB)

정부가 영화산업 회복을 위해 재정 투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원사업의 성과와 운영 방식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예산(순 제작비 3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한국영화 제작지원 예산은 1년 사이 4.6배로 늘었으나 지난해 지원작 중 올해 9월까지 개봉한 영화는 1편에 그쳤다. 추가 지원작을 선착순으로 결정하는 방식도 공정성 논란을 불렀다. 지역영화 지원사업은 폐지됐고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간 유통 질서를 둘러싼 홀드백 논의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내년 영화 분야 예산까지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된 만큼 지원 실적을 면밀히 점검하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실이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예산은 지난해 100억원에서 올해 460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해 지원작 가운데 올해 9월까지 개봉한 영화는 1편에 그쳤다. 영화 제작부터 개봉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산 확대에 따른 성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예산을 늘리는 과정에서도 내부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중예산영화 제작지원에 260억원을 더 배정하면서 예산 태스크포스(TF)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 영진위 측은 추경 일정이 촉박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부 영진위원들은 예산 확대에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없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재정 투입 규모가 급격히 커졌지만 이를 사전에 점검하는 절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지역영화에 대한 지원도 축소됐다. 영진위는 2024년 ‘지역영화 생태계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지난해 지역 영화문화 향유 실적도 당초 목표의 59.2%에 머물렀다. 중예산영화 제작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동안 지역의 영화 제작·상영 기반을 위한 별도 사업은 중단된 것이다. 영화산업의 회복 효과가 지역까지 이어지려면 지원 분야 간 균형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추진한 할인권 사업도 사후 평가가 과제로 남았다. 영진위는 271억원을 투입해 영화 할인권 450만장을 공급했다. 사용률은 99%에 달했다. 다만 할인 혜택이 끝난 뒤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았는지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할인권 소진 실적과 실제 관람 수요 회복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영화 유통구조를 둘러싼 갈등도 해소되지 않았다. 홀드백은 극장 개봉작을 OTT 등 다른 경로로 공개하기까지 두는 유예기간이다. 극장 상영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과 투자금 회수에 부담을 주고 관객의 선택을 제한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한국 영화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출범시켜 논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초 제시했던 8월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참여 주체 간 이견도 좁히지 못한 상태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최근 열린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영화분과 회의에서 “맨 마지막 (논의) 단계에 가서 (민관협의체 참여자) 서로가 또 고민해보는 지점들이 생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홀드백 논의는) 정부가 나서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문체부로서는 좀 더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스크린 상한제 등 영화계의 다른 현안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홀드백 도입 여부와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영화 분야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30.8% 증가한 1673억원으로 편성됐다. 역대 최대 규모다. 중예산영화 제작지원 대상은 올해 18편에서 내년 22편으로 확대된다. 독립예술영화는 60편에서 79편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국제 공동제작 지원도 6편에서 14편으로 확대하고, 해외 영화의 국내 촬영 유치 지원을 재개한다. 정부는 제작 기반을 넓히고 영화 유통을 활성화하는 데 재정을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예산 확대가 영화산업의 실질적인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지원작 선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사업별 성과를 확인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 의원은 “돈만 많이 쓴다고 영화산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예산영화는 개봉·관객·민간투자 성과를 따지고, 할인권은 재관람 효과까지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폐지한 지역영화 지원사업도 다시 살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영화 제작·배급업계 관계자는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더라도 배급과 마케팅 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완성된 영화가 개봉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며 “지원작이 실제 극장에 걸릴 수 있도록 배급·홍보 단계까지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할인권 사업 역시 450만장이 거의 소진됐다는 사실보다 할인 기간 이후 유료 관객이 얼마나 유지됐는지, 중소 규모 한국영화의 관객 증가로 연결됐는지 따져봐야 정책 효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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