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사건에서는 ‘누가 가해자인가’ 이전에 ‘어쩌다 서로를 가해자로 보게 되었는가’를 묻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질병이 아닌 ‘직업 관련 현상’으로 규정하고 에너지 고갈과 냉소, 효능감 저하를 특징으로 꼽는다. 소진되면 중립적인 말은 공격으로, 배려는 비하로 들리기 쉽다. 악의 없던 말이 악의로 번역되는 순간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피해를 호소한다고 모두 괴롭힘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괴롭힘으로 정의하며, 행위의 경위와 당사자의 관계를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 번아웃은 신고의 근거도, 면책의 사유도 되지 못한다.
법이 정한 조사와 보호조치는 대부분의 기업이 이행한다. 그러나 가해 여부를 가려도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판단과 무관하게 두 사람은 같은 조직에서 일해야 하고, 소진의 원인이었던 업무 과중은 그대로 남는다. 조직이 놓친 신호가 신고서의 모양으로 도착하는 경우가 있다.
법적 절차 너머의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조사와 별개로 업무량과 인력 배치를 점검한다. 둘째, 조사 종료 후 복귀한 구성원의 업무 부담과 관계를 살핀다. 셋째, 관리자에게 소진의 신호와 소통 방식을 교육한다. 과업을 줄 때는 이유와 지원 방안을 함께 설명하고, ‘할 수 있겠냐’ 대신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편이 낫다.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누가 불을 질렀는지만 따지는 동안 불길은 번진다. 서로를 가해자로 보게 만든 불씨를 끄는 일은 가해자를 가려내는 일만큼 중요하다. 이소라 노무법인 정상 공인노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