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지 7개월 만에 환송중재에서 다시 패소해 약 1530억원을 지급할 처지에 놓였다. 취소소송을 심리한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원 판정을 일부 취소했지만, 환송중재판정부는 정부 개입과 엘리엇의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1일 법무부에 따르면 엘리엇 ISDS 사건 환송중재판정부는 전날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원금 약 4849만달러(658억원)와 연 복리 5%의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정부가 엘리엇에 지급할 배상원리금과 소송비용 등에서 엘리엇이 정부에 지급할 소송비용을 상계하면 약 1억1300만달러(1530억원)다.
환송중재에서는 국민연금을 제외한 청와대·보건복지부의 개입과 엘리엇의 삼성물산 주가 하락 손해 사이 인과관계가 핵심 쟁점이었다. 정부 측은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합병이 부결됐을 것이라는 점을 엘리엇이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외국인 주주 중에도 합병에 찬성한 투자자가 있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판정부는 정부 개입이 없었어도 합병이 가결됐다면 정부 고위인사가 형사책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국민연금 의결이 합병 성사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였던 만큼 다른 투자자들이 독립적으로 표결했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끊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손해액 재산정은 환송중재 쟁점을 벗어난다며 엘리엇의 배상액 증액 요구는 기각했다.

엘리엇은 옛 삼성물산 주주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ISDS를 제기했다. 정부 개입으로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1조원 이상 하락하는 손해를 입었다는 게 엘리엇 측 주장이었다.
원 중재판정부는 2023년 6월 엘리엇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부에 배상원금 약 4849만달러와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당초 배상원금은 약 5358만달러였지만 정부가 계산 오류를 발견해 정정을 신청하면서 약 4849만달러로 줄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본 판단에 불복해 같은 해 7월 영국 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듬해 8월 정부의 소송을 각하했지만 항소를 허가했고, 지난해 7월 항소법원은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냈다.
환송된 1심 법원은 올해 2월 국민연금이 ISDS상 국가배상 책임의 주체인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원 판정을 일부 취소했다. 다만 법원은 국민연금을 제외한 청와대·복지부의 개입만으로도 엘리엇의 손해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중재판정부로 돌려보냈다.
이에 원 중재판정부와 동일한 중재인 3명이 올해 7월 심리를 진행, 영국 법원이 원 판정을 일부 취소한 지 7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다시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정부는 판정문을 분석해 중재규칙에 따른 판정의 해석·정정·추가판정 신청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아울러 중재지인 영국의 중재법에 따라 이번 판정을 다시 취소할 사유가 있는지도 살펴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