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자 쏘자 의료용 동위원소로…정읍서 본 방사성의약품 현장 [가보니]

입력 2026-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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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 20주년 미디어데이 개최
방사선, 의료‧우주‧농업 등 다양한 분야서 사용
국산 사이클로트론으로 RPT 원료 국산화 기반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있는 사이클로트론. (이상민 기자 imfactor@)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있는 사이클로트론. (이상민 기자 imfactor@)

내장산 자락과 맞닿은 전북 정읍시 첨단과학산업단지 일대에 들어서자 넓은 부지 곳곳에 연구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37만2353㎡(11만2000여 평), 축구장 52개를 합친 규모에 본관과 연구동 등 29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올해 개소 20주년을 맞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다.

2005년 ‘방사선과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곳에서는 지난 20년간 방사선을 의료·바이오부터 산업, 농업까지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졌다. 흔히 방사선이라고 하면 원자력이나 위험성을 먼저 떠올리지만 연구소 안에서는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부터 우주방사선 소재 평가, 중성자 영상검사까지 다양한 연구가 이뤄진다.

방사성동위원소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기 위해 연구소 가장 안쪽에 자리한 사이클로트론동을 찾았다. 1층 로비에서 오른쪽 복도를 따라 들어가 문을 지나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자 10여 평 남짓한 공간을 채운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사이클로트론이다.

사이클로트론은 수소 입자인 양성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해 표적물질에 충돌시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드는 장치다. 2009년 국산 기술로 개발된 이 장비는 양성자를 30메가전자볼트(MeV)까지 가속할 수 있다. 1.5V 건전지 약 2000만 개에 해당하는 에너지다.

▲방사성동위원소 자동분리장치 시스템. (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동위원소 자동분리장치 시스템. (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동위원소 하나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먼저 필요한 핵종을 정하고 이에 맞는 핵반응식과 표적물질을 찾는다. 이어 원하는 동위원소가 만들어지도록 빔 에너지와 전류량을 설정한다. 조건을 맞춘 뒤 사이클로트론에서 가속한 양성자를 표적에 쏘면 방사성동위원소가 생성된다.

만들어진 방사성동위원소에는 표적물질과 부산물이 섞여 있어 이를 산성용액에 녹인 뒤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고 원하는 동위원소만 분리·정제한다. 정제가 끝나면 고유한 방사선 순도가 99.9% 이상인지 확인한 뒤 작은 유리용기에 담고 방사선을 차폐하는 납 컨테이너와 스티로폼이 든 플라스틱 용기로 이중 포장한다. 마지막 검수를 통과해야 비로소 연구소 밖으로 나간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방사성동위원소는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등으로 공급된다. 연구소는 수입에 의존하던 항체면역 연구용 지르코늄-89(Zr-89), 신경교종암 진단 등에 활용되는 저마늄-68(Ge-68), 차세대 의료용 동위원소로 주목받는 구리-67(Cu-67) 등의 생산 기술도 국산화했다. 일부 동위원소는 해외로 수출된다.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과 안전이다. 핵종에 따라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지만 방사성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감소하는 반감기를 갖기 때문에 필요한 시점에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운영 체계가 중요하다.

▲유리용기에 담은 방사성동위원소와 이를 포장하는 패키지. (이상민 기자 imfactor@)
▲유리용기에 담은 방사성동위원소와 이를 포장하는 패키지. (이상민 기자 imfactor@)

박정훈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장은 “방사성동위원소는 핵종마다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반감기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감소하기 때문에 필요한 시점에 생산할 수 있도록 사이클로트론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사이클로트론동을 나와 다시 연구소를 둘러보면 이곳의 역할이 연구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소에는 방사선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자리 잡았다. ARTI 실용화연구동에는 현재 16개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바이오 분야에서는 노보렉스와 레디큐어 등이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소기업으로 출발한 곳 가운데는 콜마비앤에이치와 라비, 바이오메이신 등이 있다.

정병엽 첨단방사선연구소장은 “국내에서 방사선 관련 연구를 하려면 필요한 시설과 인프라를 개별적으로 갖추기가 쉽지 않다”며 “연구소에 관련 인프라가 집적돼 있어 병원과 기업 등 외부에서도 이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자력연구원과 연계해 설립된 기업 12곳 가운데 8곳이 정읍에서 만들어졌다”며 “국내에서 방사선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연구소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개소 20주년을 맞은 연구소는 다음 20년을 준비다. 35MeV급 사이클로트론과 방사성동위원소 개발의 아시아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마련 중이다. 이를 통해 향후 AI 기반 자율운전 제어시스템과 고순도 방사성동위원소 대량생산 자동화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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