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걸리는 송전탑 대신 '운영 효율' 택했다⋯전력망 패러다임 대전환

입력 2026-09-2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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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송전선로 건설 한계 봉착… '물리적 증설'서 '유연한 운영'으로 선회
정격용량 묶어둔 낡은 규제 풀고, ESS 등 비선로대안(NWAs) 전면 도입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신태현 기자 holjjak@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신태현 기자 holjjak@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나, 송전선로 건설 지연(345kV 기준 최소 9년)과 화석연료 중심의 경직된 운영 탓에 호남 등 핵심 거점의 재생에너지 접속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정부가 29일 내놓은 '전력망 혁신대책'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전력 시스템의 중심축을 물리적인 송·배전망 신설에서 유연성 자원을 활용한 운영 효율화로 전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호남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 신규 진입을 제한받은 배경에는 낡은 계통 규제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전력망은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소의 지속 운전에 맞춰 일방향·장거리 송전 구조로 구축·운영돼 왔다. 그러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다수의 소규모 설비가 분산 배치되고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을 지닌다. 문제는 한국전력공사가 재생에너지를 접속시킬 때 1년 중 불과 몇 시간 안 되는 피크타임(최대 발전) 기준인 '설비 정격용량'으로 여유 용량을 판단해 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평상시 전력망에 상당한 여유가 있음에도 태양광 전용 배전선로 이용률은 약 15% 수준에 머물렀고, 정작 신규 사업자는 망이 꽉 찼다는 이유로 접속을 거부당하는 모순이 누적됐다.

여기에 발전사업 초기 단계에 면밀한 검증 없이 '선착순'으로 무상 배분하던 망 접속권 제도도 계통 포화를 부채질했다. 일례로 호남권 해상풍력의 경우 2030년까지 15.8GW의 송전망 접속권을 선점했으나, 인허가 지연 등으로 실제 진입 예상 물량은 약 3GW에 불과하다. 즉 착공조차 불투명한 장기 지연 사업들이 '전력망 알박기'를 하면서, 당장 진입 가능한 중소 태양광 진성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배분 왜곡 현상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장기간 소요되는 신규 송전탑 건설에만 의존하는 대신, 선진국형 비선로대안(NWAs)과 IT 기반 유연 운영 체계를 전면 도입했다는 점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글로벌 전력망 병목의 해법으로 권고한 '기존망 수용력 극대화' 전략을 국내 계통에 본격 이식한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유연접속은 정격용량을 초과하더라도 우선 전력망 접속을 허용하되, 발전량이 몰리는 특정 피크 시점에만 출력을 제어하는 합리적 제도다. 망 건설 없이도 배전선로 허용 용량을 14MW에서 16MW로, 변전소 용량을 50MW에서 60MW로 즉각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배전망과 변전소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분산 배치해 낮의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밤에 방전시키는 완충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물리적 선로 보강 없이 포화지역 내 4.6GW의 태양광을 추가 수용하는 길을 열었다.

나아가 '선착순 망 배분'을 전면 폐기하고 내년(2027년) 1월부터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개편과 연계해 '경쟁입찰 낙찰 사업자'에게만 접속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은 희소한 공공재인 전력망을 진성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조적 개선의 의지다.

발전기 급전 순서 역시 기존 석탄·액화천연가스(LNG)보다 신규 재생에너지를 앞순위로 배치하도록 검토 기준을 바꾼 것 또한 전력 시스템의 중심축을 탄소 전원에서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적 방향성을 보여준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의 성패는 내년 도입될 경쟁입찰 기반의 접속 제도가 시장 충격 없이 안착하고, ESS 등 전력망 유연성 자원이 차질 없이 보급되는지에 달려 있다"며 "정부가 낡은 규제를 허물고 전력망의 빗장을 푼 만큼, 이제는 이를 뒷받침할 민간의 투자 여력과 현장 실행력이 맞물려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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