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기업 '미매각’ 등 장기 조달길 막혀
91일 만기, 차환 리스크·신용 악순환 경고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서 비우량 기업들이 공모채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치솟는 발행 금리와 투자자 외면에 밀려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만기 3개월짜리 단기 자금으로 장기 운전자금을 메우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저신용 기업들은 분기마다 차환 실패 공포에 떠는 유동성 악순환에 직면했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BBB 등급 회사채 금리는 불과 1년 만에 연 8.758%에서 10.489%까지 치솟았다. 10%가 넘는 고금리를 감수하겠다고 나서도 기관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무보증 일반회사채 시장에서 AA등급 이상 우량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84.5%를 기록한 반면, BBB등급 이하 비중은 2.1%에 그쳤다.
투자 기피 현상은 실제 수요예측 결과로도 뚜렷이 나타난다. 올해 BBB급 이하 기업이 진행한 14차례 수요예측에서 모집예정액 4950억원 중 1030억원이 팔리지 않아 미매각률이 20.8%에 달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충격은 더 크다. 올 5월 400억원 조달에 나섰던 동화기업(BBB+)은 매수 주문이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아 전액 미매각을 기록했다. 한진(BBB+) 역시 올 7월 총 주문액은 채웠으나 장기 차입을 유도한 1년물 트랜치에서 미매각이 발생했고, 중앙일보(BBB)와 이랜드월드(BBB)도 각각 미매각률 52% 10.0%를 기록하며 투자 수요 확보에 진땀을 흘렸다.
장기 공모채 시장의 문턱을 넘지 못한 저신용 기업들의 차선책은 CP와 전자단기사채 등 단기금융시장이다. 금융투자협회 집계 결과 이달 21일 기준 CP·단기사채 발행잔액은 353조5544억원으로, 지난해 말 312조3455억원 대비 약 13% 급증했다. 신용등급별 차입금 구조에서도 BBB급 기업의 단기차입금 비중은 올해 6월 말 100%에 이르며, 전년 동기 65.9% 대비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실상 장기 차입 창구가 완전히 닫히고 모든 자금을 단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CP와 단기사채의 만기가 통상 91일(3개월) 안팎으로 극히 짧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설비투자나 장기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3개월마다 만기도래액을 신규 발행으로 돌려막는 만기 불일치(미스매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자금시장의 작은 충격이나 투자심리 위축만으로도 차환이 불발돼 부도 위기에 내몰릴 수 있는 구조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우량기업의 단기 조달 확대는 금리 차이를 활용한 선택적·전술적 성격이지만, 저신용 기업은 공모채와 은행 대출이 막혀 떠밀려온 비자발적 단기화"라며 "장기 자산에 묶인 돈을 단기 차환으로 반복 메우다 보면 조달비용 상승과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신용도가 강등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