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이 비싸지는 시간 [데스크 시각]

입력 2026-09-1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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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값이 있다. 대통령의 말은 특히 그렇다. 취임 초에는 그 값이 비교적 싸다. 표현이 다소 거칠어도 기대가 메워준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같은 한마디에도 청구서가 따라붙는다. 하겠다고 하면 언제 할지를 묻는다. 바꾸겠다고 하면 무엇을 바꿀지를 따진다. 대통령의 말값이 비싸지는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기자회견을 연다. 취임 1주년 회견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슬로건은 ‘국민의 뜻, 국민의 삶 더 살피겠습니다’다. 공소 취소 논란과 연임 개헌, 부동산, 인사, 대미 투자 등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하는 국정 현안들에 대해 진솔하고 충실하게 소통하고자 한다”며 “대통령과 기자 좌석을 최대한 가깝게 배치하고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실시간 국민 댓글도 소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회견의 형식과 의도는 분명하다. 대통령과 기자의 거리를 좁히고, 국민의 질문을 더 직접 듣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소통의 양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국정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과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시점도 가볍지 않다.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왔다. 단일 악재 하나가 만든 하락이라기보다 부동산과 인사, 민생에 대한 불만이 겹겹이 쌓인 결과에 가깝다.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 가장 익숙한 처방이 ‘소통 강화’다.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보고 설명을 늘리고 메시지를 다듬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국면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를 설명 부족으로만 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이번 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질문에 답하느냐가 아니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 설명했느냐보다 무엇을 잘못 짚었다고 판단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꾸겠다고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국정 운영에도 오답노트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18일에는 불편한 질문들이 이어질 것이다. 부동산 정책이 왜 기대만큼 체감되지 않는지, 잇단 인사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경제정책의 성과가 왜 국민의 삶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지 묻게 될 것이다. 정치 현안과 개헌, 대미 투자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은 말을 통해 정치를 해온 정치인이다. 복잡한 사안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고, 즉석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답하는 것은 그의 강점으로 꼽혀왔다. 그런 점에서 기자회견 자체는 낯선 무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까다롭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임 초에는 “앞으로 하겠다”는 말 자체가 기대를 만든다. 집권 2년 차 그 문장은 “그래서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과 함께 읽힌다. “바꾸겠다”는 약속에는 “왜 이제야 바꾸나”라는 물음이 따라붙는다. 임기의 시간이 쌓일수록 같은 말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자회견 한 번이 지지율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회견 직후 여론조사 움직임도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현재의 국정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후 국정 운영에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다.

말값이 비싸졌다는 것은 말을 아끼라는 뜻이 아니다. 한마디를 해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자회견에 주어진 시간은 90분이다. 그 90분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은 회견장의 말이 아니라 이후 몇 주의 국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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