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기업 인프라 ‘체질 전환’ 서둘러야

입력 2026-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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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대표돼 온 산업화 시대
기후회복 등 생태계 연결로 바뀌어
녹색 기능 더해 지속가능성 높여야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은 인프라 발전과 함께해 왔다. 고속도로가 산업과 도시를 연결했고, 댐과 제방은 물을 확보하고 홍수로부터 도시를 지켰다. 산업단지와 공항, 항만, 철도는 생산과 물류의 기반이 되었으며 하천과 배수시설의 정비는 도시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이렇듯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제방과 관로로 대표되는 ‘그레이 인프라(Gray Infrastructure)’는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맞았다.

그러나 기업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둘러싼 조건이 달라졌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 불투수면 증가와 물순환의 왜곡은 기존 인프라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안전성과 경제성뿐 아니라 기후회복력, 물순환, 생물서식과 생태적 연결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레이에서 그린으로(Gray to Green)’는 과거의 인프라를 부정하거나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존 인프라가 담당하던 기능은 유지하면서 자연의 기능을 더하는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세계자원연구소(WRI)는 보고서(‘Integrating Green and Gray’)에서 전통적인 회색인프라와 숲, 습지, 범람원 같은 자연시스템을 결합하는 방식을 차세대 인프라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레이와 그린을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자는 접근이다.

필자가 그린 인프라 전문가로 참여한 라오스 북부 무앙싸이(Muang Xay)의 도시홍수관리 사업에서도 이런 변화를 경험했다. 세계은행이 3000만달러 규모로 지원(‘Lao PDR Southeast Asia Disaster Risk Management Project’)한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무앙싸이의 통합도시홍수위험관리였다.

무앙싸이는 여러 하천이 만나는 도시로 큰 홍수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기존의 수자원적 인프라로서의 접근이라면 홍수 방재를 위한 높은 제방 건설과 호안, 배수시설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적인 해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제방과 수문, 배수로 같은 회색 인프라와 함께 하천 주변에 홍수 시 물을 일시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공간과 공원을 함께 계획했다. 홍수 때에는 물을 받아주고, 평상시에는 시민이 자연공원으로 이용하며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인 그린 인프라로 만드는 것이다. 즉, 기존의 홍수방재 기능에 사회·문화적 가치와 생태적 편익을 함께 더한 사례다.

세계은행의 기술보고서 역시 자연의 과정과 함께 작동하고 홍수관리 외에 지역사회의 사회적 편익을 제공하는 시설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NbS(자연기반해법)의 도입을 통해 생태적·사회적·문화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레이 인프라는 그린 인프라로 진화하고, 자연전환이 시작된다.

기업 버전으로 보면 공장과 산업단지는 회색 인프라다. 그러나 공장은 건축물 하나가 아니다. 공장에 법적으로 조성된 녹지공간과 주차장, 도로, 배수로, 저류시설 등이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비가 내리면 포장면을 따라 물이 흐르고, 그 과정에서 주차장과 도로의 오염물질을 씻어 비점오염원이 된다. 이렇게 오염된 빗물은 배수체계를 따라 결국 주변 하천과 수계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를 다시 또 다른 회색 인프라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기존의 물관리 방식이다. 기업의 자연전환은 기업과 연관성 없는 먼 곳에 새로운 숲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이미 가지고 있는 회색 인프라부터 다시 볼 수 있다.

기존 회색 인프라를 그린 인프라로 전환하는 과정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녹색금융과 연결될 가능성도 열어준다.

무앙싸이가 해외 그린 인프라의 전환 사례라면 국내에서는 대전하수처리장 시설현대화 사업을 주목할 만하다. 노후 하수처리시설을 이전·현대화하고 주요 처리시설을 지하화하면서 지상공간을 공원과 체육·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6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이 투입되었으며,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가 적용되는 녹색사업의 사례다.

이렇듯 기업도 기존 회색 인프라에서 자연의 기능을 찾아 기업 친화적 맞춤형 그린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관계자에게 이런 조언을 하면 자연 전환을 새로운 비용 발생 요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기존 회색 인프라의 유지관리 체계가 부서별로 오랫동안 정착되어 있어, 그린 인프라를 도입하려면 새로운 관리체계의 정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전문가와 함께 그린 인프라의 개념을 이해하고, 기업이 보유한 유형·무형의 자산을 자연전환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할 시대를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단순한 환경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생산적 투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산업 발전을 위해 수많은 인프라들을 만들어 왔다. 그 인프라가 있었기에 오늘의 산업도 가능했다. 이제 그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능을 더해야 한다. ‘그레이에서 그린으로’는 과거 개발연대의 부정이 아니다. 산업화를 이끌어 온 회색 인프라에 물순환과 생물서식, 기후회복력과 같은 자연의 기능을 더해 지속가능한 인프라로 진화시키는 일이다.

다시 말해 기업 인프라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자연과 단절된 회색의 체질에서 자연과 함께 기능하는 체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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