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문학상 첫 SF 수상…인간과 다른 생물종 통해 인류 조명
책과 영화에 남은 문명의 흔적…다음 세대에 전할 가치 탐색

인간보다 강한 생물종이 존재한다면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오수완 작가는 장편소설 ‘에케 호모’에 이런 상상을 펼쳐놓았다. 인류의 99%가 사라진 뒤 초인 노먼과 소녀 서브가 폐허를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문명, 사랑과 책임을 들여다본다. 생태계 최정점에 자리한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를 설정해 인류가 자연에 가해온 폭력도 돌아본다. 이 작품은 제16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SF가 이 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첫 사례다.
15일 오 작가는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에케 호모’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수상의 의미에 관해 “16년 동안 글쓰기를 포기할 뻔한 순간들이 몇 번이 있었다”라며 “이번에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격려와 응원으로 알고 앞으로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써보겠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는 ‘강림’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진 뒤 30년이 흐른 시점부터 노먼과 서브의 여정이 본격화한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엑스포가 열리는 도시 지텍을 찾아간다. 노먼은 이동하면서 서브에게 물을 얻는 방법과 기계를 수리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책을 읽고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와 사라진 문명의 기억을 간직하는 일도 가르친다.
작품의 씨앗은 익숙한 슈퍼히어로에 대한 의문이었다. 오 작가는 “맨 처음 발상은 사이코패스의 슈퍼맨이었다”라며 “정말로 그런 초인이 있으면 어떻게 행동을 할지 그게 궁금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인간이 생태계 최정점에서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뒤 “정말로 그 위에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인류도 얼마든지 그렇게 멸종에 가까운 그런 재난을 당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재앙보다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노먼과 서브의 관계다. 오 작가는 노먼과 서브가 “서로 불화하면서 이해하고, 서로 관계하면서 조용히 여행하는 과정을 통해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공간을 차례로 지나게 하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서로 다른 면을 보여주고, 마지막 목적지인 지텍에서 이야기를 집중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노먼이 서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과정에는 부모와 아이의 모습도 반영했다. 오 작가는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부모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부모의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말의 내용보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고 이야기하는지에 가깝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명이 파괴된 뒤에도 남을 대상으로는 지식과 예술을 꼽았다. 오 작가는 “물리학이나 수학의 지식은 대체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는 건 예술”이라고 밝혔다. 작품에는 ‘오즈의 마법사’가 등장한다. 오 작가는 흑백 화면에서 컬러로 바뀌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예술이 전하는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서브가 좀처럼 말하지 않는 이유도 작품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오 작가는 인류의 99%가 사라지면 전기와 수도, 하수 등 사회를 유지하는 시설 상당수가 작동을 멈출 것으로 상정했다. 그런 공간을 소리와 움직임이 적은 차가운 세계로 구상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브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이 세계에 대한 거절의 뜻, 거부의 뜻인 걸로 이해를 해 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혼불문학상에는 341편이 응모했다. 7명의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진행한 끝에 ‘에케 호모’를 수상작으로 골랐다. 심사에서는 기존 아포칼립스 장르와 차별화된 인물, 여행을 활용한 구성, 간명한 문장이 주목받았다. 니체의 동명 철학서와 작품 세계가 어우러지는 점과 설명을 줄여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확보한 방식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0년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 작가는 한의사와 소설가의 일을 함께 이어왔다. 2020년에는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계속 글을 쓰는 이유를 두고 “한마디로 얘기하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