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코인 '오픈USD'엔 국내 13개사 이미 참여
연내 입법 불발 땐 제도 공백 속 미국법 시행 맞아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를 확정하고 디지털 자산의 증권·상품 구분을 정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반면 한국은 첫 법안 발의 후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발행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연내 입법이 무산되면 한국은 원화 코인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달러 코인 규제 시행을 맞게 된다.
15일 국회와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의 지급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은 내년 1월 18일 시행될 예정이다. 이 때부터 허가받지 않은 사업자는 미국에서 지급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없다. 2028년 7월 18일부터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코인을 미국 이용자에게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행위도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발행사 자격과 준비 자산, 해외 발행 코인의 미국 내 유통 기준을 담은 세부 규정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법률 제정을 마치고 시행 준비에 들어간 동안 한국은 디지털자산기본법 당정 통합안도 내놓지 못한 셈이다.

누가 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지를 두고 두 나라의 접근법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은행이 발행 컨소시엄 지분의 50%+1주 이상을 갖도록 하는 이른바 ‘51% 룰’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권은 금융 안정을 위해 은행 중심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핀테크·플랫폼 업계는 은행에 경영권을 보장하면 기술 기업의 진입과 혁신을 막을 수 있다고 맞선다.
미국에서는 은행이 아니더라도 감독 당국의 인가를 받으면 발행사가 될 수 있다. 대신 비금융 상장사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재무장관 등이 참여하는 심사기구의 만장일치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한국이 은행과 비은행 사이에 선을 긋는다면 미국은 비은행의 진입을 허용하되 빅테크 등 비금융 대기업에는 별도의 문턱을 두는 방식이다.
거래소 소유 규제도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을 20%로 제한하고 일정 요건을 갖추면 34%까지 허용하거나, 초과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미국 법안에는 이와 같은 일률적인 거래소 주주 지분 상한이 없다. 대신 지니어스법은 특정 금융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발행사의 임원이나 이사가 되는 것을 막는 등 경영진의 자격과 내부 통제를 규율한다.
준비 자산 규제는 비슷한 방향이다. 미국은 발행액만큼 현금이나 단기 국채 등 안전 자산을 보유하고 그 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국내 계류 법안과 정부 검토안도 준비 자산을 안전 자산으로 제한하고 이용자의 상환 청구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미국은 시행 일정까지 정했지만 한국은 이를 누가 어떤 감독 아래 집행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에 이어 전체 디지털 자산 시장의 규율도 정비하고 있다. 미 상원은 현지 시각 15일 오후 2시 15분 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인 클래리티법의 본회의 심의를 위한 토론종결 표결을 할 예정이다. 가결에는 60표가 필요하다. 공화당 의원 53명이 모두 찬성해도 민주당 또는 무소속 의원 7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미 상원 공화당은 민주당 요구를 반영한 126개 수정 사항을 담은 최종안을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공직자와 배우자의 가상자산 이해관계를 제한하는 윤리 규정 강화에 동의했다고 공화당 측은 밝혔다. 수정안에는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지역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유출이 발생하면 재무장관이 관련 리워드를 일시 제한하는 장치도 담겼다. 다만 이번 표결은 법안의 최종 통과를 결정하는 투표가 아니다. 가결되더라도 상원 최종 표결과 하원안과의 조정, 대통령 서명이 남는다.
한국은 증권형 디지털 자산을 규율하는 토큰증권 제도를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한다. 그러나 비증권형 디지털 자산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괄할 기본법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율을 먼저 확정하고 시장구조법을 별도로 논의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스테이블코인과 거래소 소유 규제 등을 하나의 기본법에 함께 담으려다 쟁점이 얽혔다.
제도 격차가 벌어지는 사이 국내 기업들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업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오픈스탠더드는 비자·마스터카드·스트라이프·코인베이스·블랙록 등 140여 기업이 참여하는 오픈USD를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초기 파트너 명단에는 삼성전자·신한금융그룹·두나무·카카오뱅크·케이뱅크·한화생명과 7개 카드사 등 국내 13곳도 포함됐다.
다만 명단 등재와 실제 사업 참여 확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발표 이후 일부 국내 기업은 공식 참여 계약을 맺지 않았거나 사업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클래리티법이 정할 증권과 상품의 구분 기준이 국내 기본법과 다르게 정해지는 것도 부담이다. 한미 양국에서 사업하는 국내 기업은 같은 디지털 자산을 두고 서로 다른 인허가와 공시·유통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 원화 코인 제도가 늦어지는 동안 달러 코인 결제망이 먼저 자리 잡으면 이용자와 결제 데이터, 준비 자산 운용 수익도 달러 기반 생태계에 쌓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해당 법안에 대한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기에 2027년 상반기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내 제도화의 지연으로 기업들의 사업화 자체가 시작되고 있지 못하기에 글로벌 경쟁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