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글로벌 인공지능(AI) 업계 수장들이 제기한 'AI 개발 속도 조절론'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빅테크 기업들의 전략적 셈법이라 지적하며 국내 반도체 산업의 펀더멘털 자체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일(현지 시간)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가 인공지능(AI) 개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자 곧이어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등 AI 업계 수장들도 이 같은 입장에 동조하는 의견을 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인공지능(AI) 규제론에 가세했다. 14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AI의 혜택이 널리 공유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응 방안과 법률, 규제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AI 속도조절론'의 여파로 간밤 미국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5.9% 급락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들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빅테크 수장들이 표면적으로는 'AI 안전 및 보안'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업공개(IPO)와 흑자 전환을 앞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이 막대한 AI 개발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려는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IPO를 앞둔 상황에서 마케팅과 경쟁사와의 격차 확대를 위한 전략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AI 개발 속도를 늦추면 빅테크 입장에서는 차세대 모델 학습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확보한 AI 서버를 추론 서비스에 활용해 수익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AI 개발 속도를 늦추면 가장 큰 이득은 AI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AI 프론티어가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세대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회비용이 적지 않다"며 "학습에 투하되는 AI 서버를 추론 서비스 외부 판매로 돌리면 수익화 전환 가능한 자원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강재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정부가 AI의 안정성 등을 선제적으로 규제할 경우 관련 규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빅테크가 구조적으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중한 삼성증권 연구원은 "프론티어 랩 수장들의 서로 짠 듯한 입장 표명이 일종의 규제 포획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앞서 있는 상황에서 규칙을 정하고, 독과점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판을 짜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기업의 본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속도 조절론이 반도체 업황의 펀더멘털을 훼손하는 신호는 아니라며 과도한 비관론을 경계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 내내 AI 규제와 안전성 관련 뉴스가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반도체의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을 높일 소지가 있다"면서도 "AI 투자 축소 혹은 메모리 수요 둔화 신호는 등장하지 않았으며, 반도체를 포함한 코스피의 이익 전망에도 별다른 훼손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준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AI 속도 조절론은 컴퓨팅 수요를 둘러싼 주기적인 노이즈로 판단한다"며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주가 하락은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측면이 있어 단기 변동성을 역이용한 호흡 긴 분할 매수"를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