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보전은 일시적 미봉책일 뿐
가치 실현할 자립 토대 만들어야

얼마 전 국가원로회의가 주최한 국가발전 심포지엄에서 청년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반가운 일이고, 진단도 정확했다. 청년세대의 실질소득은 줄고 자산 격차는 커지며, 취업난과 주거 불안이 결혼과 출산까지 흔든다. 그런데 토론을 지켜보며 아쉬움이 남았다. 해법이 여전히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대기업과의 임금 차액을 보전하고, 자산 격차를 줄여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자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당장 어려운 청년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며, 이런 즉각적 구제는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다만 이것만으로 청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여기에는 우리가 오래 익숙해진 머니로직이 작동한다. 좋은 일자리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자산을 쌓고, 그 격차를 정책으로 메우는 방식이다. 성공의 기준도 여전히 좋은 일자리, 높은 소득, 많은 자산에 놓여 있다.
AI가 일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대에 이 성공방정식이 그대로 통할 것이라 보면 큰 오산이다. 기업이 성장해도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만으로는 청년 모두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청년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청년에게 어떻게 더 좋은 일자리를 줄 것인가’에서 ‘청년이 어떻게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내게 할 것인가’로.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외부 유입을 최소화하는 자립의 토대다. 오해를 피하자. 임금 보전이 소비를 잠시 떠받치는 지원이라면, 자립의 토대는 청년이 스스로 서게 하는 조건 자체를 짓는 일이다. 최소한의 생존주권이 없으면 새로운 도전은 시작되지 않는다. 부족분을 돈으로만 메우면 위기는 넘기되, 정작 자기 꿈을 찾을 기회는 놓치기 쉽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질문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가 남에게 맡겨버린 일상을 스스로 꾸리며 주체성을 키우는 과정에서, 세상을 향한 관심과 물음이 자란다. 자립의 토대를 다지는 일은 생계를 넘어 꿈을 키우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스스로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꿈을 만들 수 있다.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 ‘괜찮아마을’이나 ‘서로마을’ 같은 새로운 삶을 실험하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일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립 기반이다. 토대가 안정되면 그 위에서 꿈이 자란다. 그리고 그 꿈은 부모 세대가 진열해 둔 꿈과 다를 수 있다. 자신의 일상을 통해 발아되는 달란트를 깊이 파고들어 돈이 찾는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청년이 많아져야 한다. 이처럼 그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꿈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풍요롭고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런 꿈이 자라는 환경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제 사회는 진열대에 있지 않은 그런 꿈이 자라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핵심은 지금껏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고 거래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탄소를 줄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측정해 가치로 바꾸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지역과 공동체를 돌보는 활동에 정당한 대가가 흐르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활동이 제값을 인정받을 때, 청년은 일자리를 얻는 존재에서 필요한 가치를 만드는 주체로 바뀐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거래 가능한 구조를 설계하는 일, 돈이 먼저 흐르던 자리에 살림의 가치가 흐르게 하는 일이다. 청년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사회적 가치로 환산되고, 그 가치가 다시 그의 자립을 떠받치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한다.
머니로직이 ‘무엇을 팔아 돈을 만들 것인가’를 묻는다면, 살림로직은 ‘무엇을 살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를 묻는다.
국가가 할 일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큰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수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임금을 보전하고 사다리를 놓는 정책이 오늘의 급한 불을 끈다면, 가치가 거래되는 무대를 만드는 정책은 내일의 판을 바꾼다. 국가원로회의가 청년 문제를 정확히 진단한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국가원로회의는 우리 사회에 방향 전환을 주문할 수 있는 상징적 위치에 있다.
‘청년을 어떻게 더 많이 고용할 것인가’에서 ‘청년이 어떻게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하게 할 것인가’로. 청년에게 필요한 미래는 돈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꿈으로 세상을 살리고, 그 가치로 자기 삶까지 살리는 미래다. 그것이 청년 문제를 넘어, 성숙사회를 그들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성공방정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