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할 때 가장 자유롭다는 배우 정준원은 작품 밖에서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엄격했다. 첫 지상파 주연작을 마친 뒤에도 스스로에게 매긴 점수는 50점. 그럼에도 7개월의 긴 여정을 버텨낸 자신에게만큼은 조심스럽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정준원은 14일 서울 강남구에서 MBC 금토드라마 '유부녀 킬러'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에서 "7개월 정도 열심히 촬영한 결과물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잘 마무리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유부녀 킬러'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유보나(공효진 분)가 사실은 살벌한 킬러라는 비밀에서 출발한다. 가정과 본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이어가는 유보나와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진실을 좇는 기자 남편 권태성(정준원 분)의 이야기다.
이번 작품은 정준원의 첫 지상파 주연작이자 긴 호흡의 드라마를 이끈 첫 경험이었다.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불안이었다.
정준원은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신선함도 있겠지만, 배우에 대한 신뢰가 다져진 상태가 아니라 걱정이 많았다”며 “그동안 작품에서 제가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적이 없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외에도 준비하고 가져가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늦은 나이에 주연작을 맡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며 “연기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된 작품”이라고 돌아봤다.

'유부녀 킬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는 대본과 상대역 공효진이었다. 정준원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직관적으로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 가지 장르로 규정되지 않고 여러 장르가 섞여 있었다”며 “제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방송되면 재미있게 볼 것 같았다.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가족의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나 큰 울림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공효진의 캐스팅 역시 출연을 결심한 중요한 이유였다. 정준원은 “원래부터 공효진 선배님의 팬이었다”며 “선배님이 캐스팅돼 있다는 사실이 작품을 선택한 큰 이유였다”고 밝혔다.
그가 가까이에서 경험한 공효진은 촬영장을 현실처럼 바꾸는 배우였다. 정준원은 “눈앞에 스태프와 카메라가 있고 촬영 현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데도,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그 순간의 내용과 장면이 실제라고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며 “동료 배우로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선배인 공효진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미안함도 고백했다. 그는 “제가 후배로서 살갑게 하지 못했다. 대선배님이다 보니 어렵고 조심스러웠다”며 “그런데도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시고 대화할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계속 호흡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낯설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미혼인 정준원에게 아버지 연기는 낯선 도전이었다. 그는 “감독님이 실제 권태성와 가까운 인물이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제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많이 알려주셨다”며 “촬영 초반부터 황봄이 배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함께 놀러 다니면서 서로의 벽을 무너뜨릴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완성한 권태성의 핵심은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정준원은 “초반부부터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싶었다”며 “드라마가 끝났을 때 ‘나에게도 저런 남편과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권태성과 유보나가 다시 만나는 결말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며 “후반부의 감정 변화를 설득하려면 일상적인 장면에서 권태성의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인 모습을 충분히 보여줘야 했다”고 했다.
이어 “결국 권태성이 유보나에게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연기했다”며 “그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작품으로서도 잘 마무리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제 연인이 극 중 유보나처럼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무조건 눈감아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정준원은 “아예 못 본 척한다기보다는 대화를 나누고 그만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할 것 같다”며 “응원해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동년배 배우 이상이는 촬영장에서 의지할 수 있는 친구였다. 정준원은 “제가 세 살 형인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말하고 친구처럼 지냈다”며 “공효진 선배님에게 가장 많이 의지했지만, 상이처럼 또래 친구에게서 얻는 든든함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화면에도 잘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연기한 정준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보다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촬영장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그는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긴장되고 떨린다. 대본 없이 ‘정준원’이라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털어놨다.
반대로 연기는 그에게 해방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대본은 있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저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며 “현장에서는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촬영한다. 그때 느끼는 자유로움이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해방감을 느꼈다”며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지 않았고 오래된 친구들과 지금까지 지내는 성격이다. 연기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정준원이 꼽은 자신의 경쟁력은 화려함보다 ‘일상성’과 ‘편안함’이다. 그는 “주변에 한 명쯤 꼭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작품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관계자들에게는 쓰임새가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의 연기에는 50점을 줬다. 정준원은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며 “누군가 어떤 장면이 좋았다고 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첫 주연작을 끝낸 자신에게만큼은 작은 위로를 건넸다.
“많이 걱정하고 불안했고 스스로에게 부담도 줬어요. 제 입으로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쁘지 않게 소화해낸 것 같아 다행이예요. 고생했다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