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보다 묘한 우정…'포핸즈'가 되살린 라이벌 서사 [해시태그]

입력 2026-09-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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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한 대의 피아노 앞에 두 천재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서로를 꺾고 싶어 하면서도 누구보다 상대의 음악을 정확히 알아듣죠. 경쟁과 동경, 우정이 한 곡 안에서 뒤섞이는 라이벌인데요.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의 강비오(송강 분)와 최정요(이준영 분)는 친구이면서 경쟁자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친구이지만, 상대가 가진 재능 때문에 가장 깊은 열등감을 느끼는 관계인데요 이기고 싶은데 잃고 싶지는 않은 사람. 두 천재의 ‘묘한 우정’이 시청자를 피아노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죠.

‘포핸즈’는 지난달 29일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 가구 기준 시청률 3.4%로 출발했습니다. 다음 날 방송된 2회에서 5.9%로 뛰었고, 3회 4.4%를 거쳐 6일 4회에서 5.8%를 기록했는데요. 온라인의 움직임은 더 뚜렷합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가 8일 발표한 9월 첫째 주 조사에서 ‘포핸즈’는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 1위를 차지했죠. 8월 넷째 주에 이어 2주 연속 정상이죠. 출연자 부문에서는 이준영이 2주 연속 1위, 송강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진제공=tvN)
(사진제공=tvN)


‘포핸즈’의 출발은 익숙한데요. 늘 정상에 있던 엘리트 앞에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천재가 나타나면서 완벽해 보이던 세계가 흔들립니다. 다만 두 사람 가운데 누구도 일방적인 악역은 아니죠.

비오는 세계적인 지휘자의 외손자로,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완성형 피아니스트입니다. 정확한 기교와 안정적인 연주를 갖췄지만, 타인의 기대에 맞춰온 탓에 자기 음악을 찾지 못했는데요.

정요는 정반대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음악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는데요. 정제되지 않은 대신 자유롭고 강렬하죠. 비오에게 정요는 자신에게 없는 감각과 자유를 지닌 사람이고, 정요에게 비오는 자신이 누리지 못한 교육과 무대의 상징이죠.


(출처=유튜브 채널 'tvN'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tvN' 캡처)


이들의 대결은 전형적인 ‘천재 대 노력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천재성의 충돌인데요. 두 사람은 상대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죠. 밀어내려는 경쟁심 속에 닮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자리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승리만으로는 통쾌한 결말이 되기 어려운데요. 시청자는 누가 더 뛰어난지를 넘어, 두 천재가 서로의 음악을 인정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게 됩니다. 승부보다 관계의 향방이 더 궁금해지는 것이죠.

제목인 ‘포핸즈’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포핸즈는 두 연주자가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연주하는 방식인데요. 각자 한 대씩 맡는 ‘투 피아노’와 달리 건반과 페달의 움직임, 좁은 자리까지 공유해야 합니다.

개인의 기량만 뛰어나다고 좋은 연주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죠. 한 사람이 속도나 호흡을 놓치면 다른 사람의 연주까지 흔들립니다. 언제 앞서고 물러날지, 상대를 얼마나 믿을지를 함께 결정해야 하는데요. 비오와 정요에게 어찌 보면 이 연주법은 역설적이죠.

스탠퍼드대 독일학자 에이드리언 도브는 2014년 포핸즈를 19세기 유럽에서 두 사람이 가까이 앉아 손과 몸을 맞댈 수 있었던 드문 연주 방식으로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도 낭만적 의미가 투영됐던 이유인데요. tvN은 ‘포핸즈’를 ‘청춘들의 우정과 성장’으로 소개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질투와 동경, 경쟁과 의존이 뒤섞여 있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 감정이 라이벌 서사에 묘한 긴장을 더합니다.


(출처=유튜브 채널 'tvN' 캡처)
(출처=유튜브 채널 'tvN' 캡처)


해외에서도 반응은 이어졌죠. ‘포핸즈’는 6일까지 집계한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TV쇼 순위에서 200만 시청 수로 5위에 처음 진입했습니다. 미국 대중문화 매체 디사이더는 지난달 31일 공개한 리뷰에서 ‘포핸즈’를 익숙한 한국 로맨스의 공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변주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추천했는데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비오와 거칠지만, 열정적인 정요가 서로를 더 나은 연주자로 밀어 올리는 관계, 클래식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를 강점으로 꼽았죠.

해외 시청자들이 주목한 대목도 비오와 정요의 관계인데요. 레딧 관련 게시물에서는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남성 우정을 반기는 반응과 함께, 두 사람의 눈맞춤과 감정선을 BL의 문법으로 읽으며 매력을 느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예고편과 포스터만 보고 BL 드라마로 예상했다는 시청자도 있었죠. 반면 우정과 성장물로 소개된 작품이 BL을 연상시키는 연출을 지나치게 활용한다는 지적도 있어,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한 이용자는 “정요는 비오를, 비오는 피아노를, 피아노는 정요를 선택한다”며 이들의 관계를 색다른 삼각관계에 빗대기도 했는데요. 아직 4회까지만 방송된 데다 특정 커뮤니티의 반응인 만큼 해외 시청자 전체의 평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정과 동경, 경쟁 사이에 해석의 여지를 남긴 감정선이 국내외에서 작품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죠.

스포츠와 예술, 입시처럼 승패와 순위가 분명한 청춘물은 오래전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가장 넘기 힘든 경쟁자’라는 역설을 활용해왔는데요. 다만 ‘포핸즈’는 경쟁이 끝난 뒤 우정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감정이 동시에 움직인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결을 만듭니다.

2022년 2월 방송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대표적인데요. 나희도(김태리 분)와 고유림(김지연 분)은 동경하던 선수와 팬으로 출발해 국가대표 자리를 다투는 경쟁자가 되죠. 강비오와 최정요 역시 상대의 재능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아봅니다. 나희도와 고유림이 칼끝을 맞대며 성장했다면, 비오와 정요는 건반 위에서 상대의 속도와 호흡을 읽죠.


(사진제공=KBS2)
(사진제공=KBS2)


클래식 음악을 다룬 작품으로는 KBS가 2016년 3월 26일부터 방송한 3부작 ‘페이지터너’가 있는데요. 천재 피아니스트 윤유슬(김소현 분)과 그를 경쟁자로 여긴 서진목(신재하 분), 사고 이후 유슬의 도전을 돕는 정차식을 통해 재능과 열등감, 죄책감과 재기를 풀어냈죠. 특히 진목은 유슬을 이기고 싶어 하면서도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는데요. 경쟁자를 향한 감정이 미움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핸즈’와 닮았습니다.


(사진제공=U+모바일tv)
(사진제공=U+모바일tv)


2025년 2월 10일 공개된 U+모바일tv ‘선의의 경쟁’도 관계의 모호함으로 화제를 모았죠. 유제이(이혜리 분)와 우슬기(정수빈 분) 사이에는 호의와 경계, 집착과 의심이 뒤섞입니다. ‘포핸즈’보다 위험하고 비대칭적인 관계지만, 경쟁인지 우정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여백이 시청자의 해석을 끌어낸다는 점은 비슷한데요. ‘포핸즈’를 두고 우정과 로맨스적 긴장감 사이에서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피아노의 숲 (출처=piano-anime.jp)
▲피아노의 숲 (출처=piano-anime.jp)


이야기의 골격이 가장 가까운 작품은 이시키 마코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피아노의 숲’인데요. 2007년 극장판에 이어 2018년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죠. 정규 교육을 받은 아마미야 슈헤이와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자기 방식으로 연주해온 이치노세 카이는 각각 훈련된 영재와 본능적인 천재를 대표하는데요. 슈헤이는 카이의 음악에 매료되면서 자신이 쌓아온 기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카이에게 슈헤이는 친구이자 넘어야 할 경쟁자가 됩니다.

‘체계적으로 길러진 천재’와 ‘규칙 밖에서 나타난 천재’라는 점에서 강비오와 최정요는 슈헤이와 카이의 계보를 잇는데요. 두 작품 모두 상대의 재능에서 느끼는 경이와 질투,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고통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죠.

차이는 경쟁과 협업을 오가는 방식에 있는데요. ‘포핸즈’는 누가 더 뛰어난지를 묻는 동시에, 경쟁하는 두 천재가 함께 어떤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보여주죠. 승부와 협업을 오가는 이 구조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팽팽하게 만듭니다.

친구라기에는 치열하고, 경쟁자라기에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는데요. 각자의 무대에서는 꺾어야 할 상대이면서 함께 연주할 때는 가장 믿어야 할 파트너가 되죠. 아직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 관계가 남은 몇부작(총 12부작) 동안 어떤 화음을 만들어낼지, 그래서 ‘포핸즈’의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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