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국가의 산업지도와 운명을 바꾸고 있다. AI를 선점한 국가는 세계의 규칙을 만들지만 뒤처진 국가는 다른 나라가 만든 기술과 규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AI에만 돈을 쏟는다고 AI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사회 전반을 바꿀 핵심 기술은 AI와 양자컴퓨팅, 에너지 기술이다. 세 기술은 하나의 생태계처럼 연결돼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려면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한 차세대 에너지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양자컴퓨팅의 발전 역시 AI의 연산능력과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수석 아래 AI와 양자컴퓨팅, SMR 등 핵심 분야의 비서관을 배치하고 정책과 예산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고속도로를 놓겠다면서 전력도, 다음 세대의 연산기술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출발부터 막히게 된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AI 수석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필자가 비판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다.
AI 전략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인재와 자본, 데이터에서 우리보다 크게 앞서 있다. 이들과 범용 AI 모델의 크기만으로 정면승부하는 것은 현실적인 전략이 아니다. 기본적인 AI 기술과 지식은 확보하되 자체 모델 개발 경쟁에만 국가 자원을 쏟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도스와 윈도를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그 위에서 아래아한글과 V3, 네이버와 다음을 탄생시켰다. AI도 마찬가지다. 기존 모델과 오픈소스를 활용해 제조업과 의료, 피지컬 AI 등 우리가 강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델의 매개변수 숫자를 겨루는 추격자가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한국형 응용 AI’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도 훌륭한 AI 자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이 ‘왕의 남자’와 ‘대장금’ 같은 한류 콘텐츠로 이어졌듯 역사·문화 자료를 체계적으로 디지털화해 AI에 학습시키면 새로운 콘텐츠와 시장을 만들 수 있다. AI 시대에는 인문학에 대한 투자도 곧 기술과 산업에 대한 투자다.
필자는 22대 국회 개원 직후 1호 법안으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안철수 AI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을 비롯한 19개 법안이 병합돼 AI 기본법이 제정됐다. 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고위험 AI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다.
그러나 기술은 달리는데 법이 멈춰서는 안 된다. AI는 반년 사이에도 기술과 기업의 순위가 바뀐다. AI 기본법도 최소 1년에 한 번은 점검하고 개정해야 한다. 후발주자인 한국에 선도국과 똑같은 강도의 규제를 적용하면 따라잡을 기회조차 잃는다.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는 마련하되 진흥과 규제의 기계적 균형보다 혁신과 산업 육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최근에는 AI 생성물 표시 의무를 사업자의 역할에 따라 구분하는 후속 법안을 발의했다. AI 개발사업자는 생성물에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를 넣고 플랫폼 등 이용사업자는 국민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하게 했다. 중복규제는 줄이고 각자의 책임은 명확히 해 이용자의 신뢰를 높이자는 취지다.
국회의 구조도 기술의 속도에 맞게 바꿔야 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정쟁이 많은 방송통신 현안에 밀려 미래 산업의 논의가 뒤로 밀리기 쉽다. 예산과 인력을 늘리지 않더라도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별도 상임위원회로 분리해 전문성과 입법 속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인재가 머무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은 해외에서 공부한 인재가 돌아오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우수한 인재가 빠져나가는 나라가 됐다. 대학 교수가 기업 임원을 겸하거나 직접 창업할 수 있도록 산학 간 이동을 유연하게 하고 연구자가 성과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GPU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세계적인 인재와 혁신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살 수 없다.
대한민국은 AI 하나만 바라보거나 미국과 중국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이길 수 없다. AI·양자컴퓨팅·에너지 기술을 함께 육성하고, 제조·의료·문화 등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응용 AI의 길을 열어야 한다. 기술을 이해하는 입법, 선택과 집중이 분명한 국가전략, 인재가 자유롭게 도전하는 환경을 갖출 때 대한민국은 미래 기술의 주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향후 5~10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