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AI를 보건의료 현장에 빠르게 확산하려면 기술개발을 넘어 데이터·디지털 인프라와 명확한 책임 체계, 경제적 타당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AI의 잠재력만 앞세우기보다 도입 이후의 안전성과 효과를 지속해서 관리해 국민과 의료진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릭 서덜랜드(Eric Sutherlan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 보건경제학자는 28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열린 ‘2026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제 심포지엄’에서 ‘위해 없이 빠르게 확산하기: 보건의료 분야의 AI’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서덜랜드 선임 보건경제학자는 “AI 혁명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당면 과제”라며 “AI를 의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려는 시장의 힘과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보건의료의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 AI 확산을 위해서는 먼저 보건의료 데이터의 분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30년간 의료 디지털화가 진행됐지만 각 기관이 자체 기술과 데이터를 구축하면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그는 “분절된 시스템은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확장이 어려우며 변화에 느리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 자산을 통합하면 AI를 통해 더 많은 통찰을 얻고 비용효율적이면서 확장 가능하고 환자 위험은 낮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AI가 시범사업과 실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확산 단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실제 의료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설명이다. 서덜랜드 선임 보건경제학자는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나면 전체 이행 과정의 약 10%가 진행된 것이라는 비유가 있다”며 “안전 프로토콜과 검증체계를 마련하고 사람들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이어 “AI 솔루션 개발은 상대적으로 쉬운 부분”이라며 “정말 어려운 것은 기존 시스템에 통합해 모두가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산의 핵심 조건으로는 ‘신뢰’를 꼽았다. OECD는 올해 5월 스페인 보건부와 마드리드에서 ‘보건의료 AI의 책임 있는 확산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를 열고 AI를 책임 있고 효과적으로 확산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AI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명확히 파악하고 기관 간 협력을 확대하며 의료진과 국민의 활용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덜랜드 선임 경제학자는 “확산은 신뢰의 속도로 이뤄진다”며 “대중은 AI 개발자와 기술기업, 공공기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각 기관도 서로 신뢰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활용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서덜랜드 선임 보건경제학자에 따르면 OECD 국가 가운데 AI 활용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갖춘 국가는 3분의 1 미만이다. 의료진과 국민의 AI 이해도를 높이는 동시에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단순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술의 개발부터 사용 이후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관리체계도 주문했다. AI는 출시 이후에도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계속 변화할 수 있어 개념·설계·평가·구축·허가뿐 아니라 시장 진입 이후의 성능까지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AI 생애주기의 각 단계에서 누가 검토하고 책임질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며 “허가와 승인 주체가 불분명하면 기관들이 책임을 미루면서 도입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십과 감독체계, 데이터·디지털 인프라,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절차가 공통 기반으로 마련돼야 혁신기업도 이를 활용해 더 빠르게 기술을 확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 의료 AI를 확산할 수 있는 유리한 기반을 갖춘 국가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 3년간 OECD에서 한국의 상황을 지켜봤는데 한국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며 “강력한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과 국민의 신뢰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3~5년이 AI 확산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시기”라며 “정부와 산업계, 의료현장, 시민사회가 공동의 목표에 합의하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추진 주체가 기반과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함께 협력하는 것이 위해 없이 의료 AI를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