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고전 중인 한국 배터리 산업이 급성장하는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강력한 탈(脫)중국 기조와 고율 관세 정책이 한국산 배터리에 강력한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27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K-배터리, 위기인가 전환기인가: ESS를 중심으로 본 새로운 성장축의 모색'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근 한국 배터리 산업의 부진 원인으로 '전기차 시장 위축'과 '삼원계(NCM) 배터리의 경쟁력 약화'를 꼽았다.
실제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된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BEV) 판매 증가율이 2025년 4분기 -31%, 2026년 1분기 -23%로 역성장했다. 유럽 시장에서는 저가형 전기차 수요가 늘면서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 내 한국산 배터리 점유율은 2023년 55%에서 2025년 35%로 하락한 반면, 중국산은 같은 기간 42%에서 61%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성장축'으로 ESS 시장을 지목했다. 글로벌 ESS 시장은 2023년 185GWh에서 연평균 19% 성장해 2035년 1449GWh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미국 ESS 시장은 2023년 55GWh에서 연평균 16% 성장해 2035년 320GWh로 팽창할 것으로 예측됐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맞물리면서 AI 데이터센터용 무정전 전원장치(UPS) 시장이 2035년 135GWh까지 뛸 것으로 관측됐다.
여기에 미국의 '탈중국 기조'는 한국 기업에 유리한 부분이란 분석이다.
미국은 2026년부터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무역법 301조에 따른 25%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중국산 ESS의 관세율은 총 40.9%로, 한국산(12.5%)보다 28.4%포인트(p)나 높아졌다.
아울러 미국 현지 생산 배터리에 대해 kWh당 최대 45달러를 지급하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가 유지되고, 강력한 금지외국기관(PFE) 규제까지 도입되면서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K-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ESS 시장의 기회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국내 소재 산업의 탈중국과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PFE 규제에 대응해 셀뿐만 아니라 소재와 핵심 광물까지 포함한 밸류체인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전략산업분석실장은 "중국의 제조원가 우위가 여전하지만, 미국의 관세와 PFE 규제가 겹치면 중국산 수입 제품과 한국 현지 생산 제품 간의 가격 역전도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PFE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와 핵심 광물까지 포함한 탈중국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며 "최근 발표된 국내생산세액공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직접 환급(제3자 양도)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세부 지침이 확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