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할 때 최종 매입가 확정…사후정산 요청해도 7일 안에 가격 결정
주유소가 간판을 내건 정유사 제품을 월 구매량의 60% 이상만 사고 나머지 40%까지 다른 정유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가 바뀐다. 최종 매입원가를 모른 채 기름을 소비자에게 판매해야 했던 사후정산 방식도 원칙적으로 폐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아 ‘석유유통업종 표준대리점계약서’를 개정했다고 26일 밝혔다.
개정 계약서에는 주유소가 상표 사용계약을 맺은 정유사로부터 월별 총구매량의 60% 이상을 구매하고 구체적인 비율은 양측이 합의해 정하도록 했다. 주유소는 나머지 물량을 다른 정유사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정유사가 혼합구매를 이유로 공급가격이나 공급물량, 거래조건을 부당하게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주유소가 정유사별 가격과 공급 조건을 비교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석유제품 공급시장의 경쟁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다만 혼합구매가 이번 개정으로 처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도 정유사가 주유소에 자사 제품을 전량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현행법상 이미 금지된 전량구매 강요를 구체적인 구매 비율과 함께 표준계약서에 반영해 업계 관행을 바꾸려는 취지다.
주유소의 매입가격을 뒤늦게 확정하던 사후정산 방식도 손질한다. 현재 업계에서는 주유소가 발주 당시 정유사가 제시한 가격으로 제품을 우선 공급받은 뒤 다음 달 월평균 가격을 적용해 최종 공급가격을 정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주유소가 휘발유를 L당 1650원에 발주했더라도 이는 최종 매입가격이 아니다. 다음 달 월평균 가격이 L당 1620원이면 차액을 정산받고 1680원이면 그 차액을 추가로 부담하는 식이다. 실제 가격 산정 기준과 차액 처리 방식은 정유사와 계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유소는 소비자에게 기름을 판매하는 시점에도 실제 원가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국제유가가 급변하면 예상보다 매입가격이 높게 확정돼 판매 마진이 줄거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어 판매가격 결정과 경영계획 수립에 불확실성이 컸다.
앞으로는 주유소가 제품을 발주한 시점의 가격을 최종 매입가격으로 확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 주유소가 사후정산을 원하면 예외적으로 허용하되 발주 후 7일 이내에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7일 이내 정산’은 대금을 7일 안에 지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종 공급가격을 그 안에 확정한다는 뜻이다.
이번 개정은 국제유가 급등 과정에서 불거진 전속거래와 사후정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월 한국주유소협회와 SK에너지·HD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GS칼텍스가 체결한 상생협약의 후속 조치다.
표준계약서는 법률상 사용이 강제되는 계약서가 아니라 공정위가 사업자에게 채택을 권고하는 거래 기준이다. 실제 효과는 정유사와 주유소가 신규·갱신 계약에 개정 내용을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달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권장하고 대리점거래 실태조사를 통해 혼합구매와 가격 결정 방식 등 석유유통업계의 거래 관행이 바뀌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