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규 한국주강 대표 “대기업 독점하던 120t급 주강품 이젠 국내엔 우리뿐”

입력 2026-08-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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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t급 대형 주강 첫 납품…“국내 대안 공백, 수주로 연결”
가스터빈 공장 준공ㆍ특수강 비중 확대…소재 주권 지키며 수익 구조 전환

▲하만규 한국주강 대표이사. (사진제공=한국주강)
▲하만규 한국주강 대표이사. (사진제공=한국주강)

경남 함안에 있는 한국주강 공장. 1600도가 넘는 붉은 쇳물이 거대한 주형 안으로 쏟아져 내리며 연신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다. 단 하나의 120t(톤)급 주강품을 얻기 위해 투입되는 쇳물량만 200t에 육박한다. 이 정도 규모의 출강과 주조를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설비와 부지를 갖춘 생산 기지는 이제 국내에 사실상 단 한 곳만 남았다.

코스피 상장사 한국주강이 최근 국내 대형 조선사에 120t급 주강품을 성공적으로 납품하며 국내 유일의 대형 주강 소재 공급처로서 입지를 다졌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중량 구간으로, 대기업들이 주조 사업을 잇달아 축소 및 정리하면서 생긴 시장의 공백을 기술력과 설비 경쟁력으로 채워낸 성과다.

12일 하만규 한국주강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우리가 제품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를 넘어, 이만한 크기의 주강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국내외에 몇 군데나 남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국면”이라고 말했다.

◇“70~80t이 국내 한계선…100t 이상 대안 없어”

주강은 용강을 주형에 부어 굳혀 만드는 핵심 금속 소재다. 단조나 압연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대형 및 복잡한 형상을 이음매 없이 단 한 덩어리로 성형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선박의 방향을 잡아주는 러더 혼과 스턴 보스, 발전 설비의 고온·고압을 견디는 터빈 케이싱 등이 모두 주강을 거쳐 탄생한다.

문제는 생산 가능한 중량의 한계다. 하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최대 70t에서 80t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제조사가 한 곳 정도 남아있지만, 100t이 넘는 대형 구간으로 올라가면 국내에는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터빈 케이싱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을 살펴봐도 중국 내 두세 곳 정도만 거론될 뿐 타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에서 조달이 불가능해지면 사실상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박과 발전 설비, 함정 등 국가 핵심 산업의 뼈대가 되는 대형 주강이 단순한 부품 조달을 넘어 ‘소재 주권’의 문제로 부각되는 이유다.

이처럼 공급망이 급격히 줄어든 원인은 설비와 투자 부담에 있다. 120t급 제품을 생산하려면 200t에 육박하는 쇳물을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대형 전기로와 거대한 주형, 열처리 및 가공 설비, 이를 뒷받침할 넓은 부지가 필수적이다.

하 대표는 “대형 전기로 등 신규 설비 투자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 현 산업 구조상 신규 진입으로는 사업성을 맞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과거 H사가 주강 사업을 먼저 정리하고 D사 등 주요 대기업 사업부들도 축소 수순을 밟은 것 역시 다품종 소량 생산 특성상 공정 손이 많이 가고 정밀 검사 부담이 커 직접 생산보다 외주 조달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산 소재 사용을 제한하는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주요 조선사와 중공업계가 안정적인 국내 공급처인 한국주강을 다시 찾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스터빈 전용 공장 준공…고부가 특수강으로 수익성 개선

한국주강은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의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7월 말 연간 10기 분량 대응이 가능한 가스터빈 전용 공장을 준공했다. 5월 초도품 생산을 완료한 데 이은 대규모 후속 조치다.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이 있다. 대형 가스터빈 수요가 급증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기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제조사는 5곳 안팎에 불과하다. 특히 터빈 케이싱은 고온ㆍ고압ㆍ고속 회전하는 로터를 감싸 내부 압력을 유지해야 해 주조 난이도가 가장 높은 품목으로 꼽힌다.

하 대표는 “업계에서는 터빈 케이싱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주강품이든 다 소화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며 “고객사로부터 품질 검사만 통과하면 생산 물량을 전량 구매하겠다는 타당성 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주강은 조선용 물량으로 기본 가동률을 유지하고, 발전용 특수강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 중이다. 연간 6500~6800t 규모의 조선 물량으로 공장 가동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단가가 높은 특수강 제품 비중을 늘려 이익률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현재 추진 중인 노르웨이 정유·가스 표준 규격인 노르삭(NORSOK) 인증을 취득할 경우, 공급 가능한 특수강종의 톤당 판매가는 일반 주강 대비 최소 50% 이상 높아질 전망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사실상 0%였던 주강 매출 내 발전 비중을 올해 10%, 내년 20%까지 확대하고, 80% 수준이던 조선 비중은 50% 선으로 조정해 다변화된 수익 구조를 확립할 계획이다.

1987년 설립 이후 약 40년간 대형 주강 외길을 걸어온 한국주강은 함안 공장 별도 기준 36명, 외주 인력을 포함해 90여 명의 인력이 국내 대형 주강 생산 기지를 지켜내고 있다.

하 대표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부품이 아닌 전체 산업의 뼈대”라며 “배가 방향을 잡고 터빈이 돌아가는 것은 이 뼈대가 밑바탕에서 버텨주기 때문이며, 한 번 무너진 산업 뼈대는 다시 세우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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