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가 1990년대 외환위기 도화선”
“엔저 동조해 원화ㆍ위안화도 약세”
“시장 개입은 신호일 뿐 日 정책 조치 필요”
사실상 일본은행 9월 금리인상 우회 압박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말 일본 당국과 외환시장 공동 개입에 나선 배경으로 엔화 약세가 아시아 전역의 통화 매도세로 확산돼 제2의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시했다. 특히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가 저평가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또 우회적으로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기도 했다.
베선트 장관은 4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엔화 매수 개입 이유에 대한 질의에 “많은 아시아 통화가 엔화와 연동돼 있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는 엔화의 급격한 약세가 도화선이 됐다”고 답했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의 아시아 통화 상황에 대해서는 “엔화가 약세를 보이기 때문에 한국 원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도 위안화 절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같은 날 이뤄진 CNBC방송에 출연해서도 “미국이 엔화 가치 부양 노력에 동참한 이유는 엔화 약세가 아시아 전역의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안정적인 엔화는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역과 경제 규모, 일본이 세계 저축 시장에 기여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엔화는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 정부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는 일본의 정책 시행을 함께 지원하고 역내 안정을 돕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개입만으로 환율 방향 결정 불가”
베선트 장관은 미일 공동 외환 개입은 단기적으로 변동성을 억제하는 데 그칠 수 있으며, 엔화 약세를 초래한 근본 요인을 해결하는 일본의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개입만으로는 환율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 “시장에 신호를 줄 수는 있지만, 결국 환율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정책으로 미국이 이번 개입에 참여한 것은 일본의 정책 방향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베선트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으나, 일본 당국이 이번 시장 개입 이후 더 광범위한 정책 변화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사실상 9월에 있을 차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CNBC도 “베선트 장관이 금리 인상을 직접 요구하는 것은 피하면서도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는 15년간 알고 지낸 사이다. 그는 시장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깊이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은 또 양적완화·저금리·확장적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온 아베 신조 정권 이후의 일본 경제 개혁에 대해 “경기 재부양 정책을 추진했고, 자본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기업 개혁도 진행했다. 기초재정수지도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15년에 걸친 경기부양 정책이 지속적이고 견고한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며 “아베노믹스 단계는 끝났고 이제는 다카이치노믹스의 시대”라고 말했다.
아베노믹스를 계승하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우회적으로 기조 조정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닛케이는 베선트의 이 발언에 대해 “장기간의 대규모 금융완화가 엔저의 원인이 된 만큼 일본이 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최근 40년래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엔저의 핵심 원인은 미국과 일본 간 큰 금리 격차(미국 3.50~3.75%, 일본 1%)가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1.0%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목표치를 웃도는 물가상승률에 처해있지만 수십 년간 디플레이션 위험과 싸워온 까닭에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양국의 외환 개입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 임시방편에 가깝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강달러 정책 지키기 위해 ‘유로화 매도’ 선택”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이번 외환시장 개입에서 달러화가 아닌 유로화를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엔화를 매수한 데 대해 닛케이에 “유럽 당국자들에게 이번 유로화 매각은 단지 외환보유액의 자산 구성을 조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고 알렸다.
그는 CNBC에서는 “미국의 강달러 정책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 공동 개입에서 엔화 매입·유로화 매도 방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 당국은 달러 매도 개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는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달러 매도 개입을 포함해) 어떠한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공유했다.
이 고위 당국자는 외환 개입에 참여하는 틀을 확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에는 참여 의지를 보이는 국가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