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도 ‘바퀴벌레 청년들’의 분노

입력 2026-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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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일부 청년들이 바퀴벌레처럼 언론과 SNS, 정보공개 활동에 뛰어들어 모든 사람을 공격한다.”

5월 인도 대법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이후 가짜 학위로 전문직에 진입한 일부를 겨냥한 발언이었는데 언론이 왜곡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인도 청년들이 받아들인 의미는 달랐다.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붙은 멸칭을 스스로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렇게 ‘바퀴벌레 국민당(CJP)’이 탄생했다.

SNS의 풍자에서 출발한 CJP는 두 달 만에 나렌드라 모디 정부를 물러서게 한 정치운동으로 성장했다. 불을 붙인 것은 200만 명 넘는 수험생이 피해를 본 의대 입시 문제 유출 사건이었다. 값비싼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견디며 좁은 입시 관문에 매달렸던 청년들에게 문제 유출은 단순한 행정 사고가 아니었다. 노력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경찰의 강경 진압은 분노를 키웠다. 뉴델리에서 시작된 시위는 뭄바이와 콜카타 등으로 번졌고 야당과 시민사회도 가세했다. 결국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이 지난주 사퇴했다. 모디 총리가 2014년 집권한 이후 여론의 압박으로 각료가 물러난 첫 사례다. 비웃음의 대상이던 ‘바퀴벌레’가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을 움직인 셈이다.

인도 청년들의 분노는 인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하자 청년들이 ‘탕핑족’과 ‘전업자녀’를 택한다. 탕핑족은 치열한 경쟁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노동과 소비를 택한 청년층을 뜻한다. 전업자녀는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 대신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으며 집안일을 맡게 된 청년들을 가리킨다. 한국 청년들은 입시와 취업, 주거로 이어지는 경쟁에서 부모의 자산과 정보력이 결과를 좌우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학자금 대출과 주거비 급등, 불안정 노동이 청년 세대의 좌절을 키웠다. 경제는 성장해도 양질의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고 자산을 먼저 보유한 기성세대와 그렇지 못한 청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게 된 것이다.

청년들이 좌절을 표현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의 탕핑족처럼 경쟁에서 조용히 이탈하기도 하고, 인도의 CJP처럼 거리로 나와 제도 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뿌리는 같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더 나은 삶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 즉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불신이다. 이를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눈높이 문제로 돌릴수록 세대 간 간극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 당국은 청년의 분노가 커질 때마다 현금 지원과 대출 확대, 일회성 채용 같은 처방을 내놓는다.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경쟁을 없애 달라는 것도 모두에게 성공을 보장하라는 것도 아니다. 채용과 시험의 규칙이 투명하고 출신과 부모의 재산, 연줄이 노력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도의 ‘바퀴벌레 청년’들도 잘 살기 위해 좁은 문을 무작정 넓혀 달라고 외친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 좁은 문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세계의 정책 당국자들이 들어야 할 것은 선심성 지원을 더 달라는 목소리가 아니다.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각자의 능력을 펼칠 무대를 만들어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다. 바퀴벌레라는 조롱까지 깃발로 바꾼 청년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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