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핵심 파트너’로 급부상했다. 반도체 공급망과 탄탄한 제조업 기반, 기가와트(GW)급 데이터센터(DC) 구축·운영 역량을 동시에 갖춘 국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미·중 AI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 생산부터 피지컬 AI 실증, 인프라 운영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27일 IT 업계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을 계기로 삼성전자·SK그룹은 엔비디아·브로드컴 등 빅테크와 9500억달러(약 1390조원)에 이르는 AI 반도체·인프라 협력에 나선다. 미국 빅테크가 초거대 AI 협력의 중심에 한국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AI 인프라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은 글로벌 AI 가속기의 성능과 공급 확대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모델 성능을 넘어 추론 효율과 인프라 성능으로 확장되면서 메모리 대역폭과 용량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에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총 2000억달러 규모의 첨단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 AI 칩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엔비디아와 AI 팩토리 구축을 포함한 5000억달러 이상의 포괄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장기 AI 메모리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HBM을 비롯한 차세대 AI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최재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지정석좌교수(인이지 대표)는 “글로벌 빅테크 입장에선 메모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싸게 사려는 것”이라며 “한국에게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모델을 장기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생 협력”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피지컬 AI’ 실증 역량도 빅테크가 한국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핵심 경쟁력이다.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현장에서 수십 년간 공정 데이터와 생산 최적화·품질관리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피지컬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실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로 꼽힌다.
유영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피지컬 AI 잠재력과 뛰어난 제조업 기반을 가진 한국은 생태계 확장을 원하는 엔비디아 등 빅테크에 매우 좋은 협력 상대이자 시장 확장을 위한 핵심 교두보”라며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선 사업은 없는 만큼 AI 시장에서 한국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라고 진단했다.
‘AI 3강’ 도약을 목표로 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은 물론 미·중 갈등 격화 속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출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의 유력한 대안이라는 점도 빅테크의 선택을 이끈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SK텔레콤, 네이버 등이 GW급 AIDC를 구축하는 등 반도체부터 AI 인프라까지 아우르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김판건 국가AI전략위 산업 AX·생태계 분과위원은 이번 초거대 협력을 계기로 차세대 삼성, SK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 위원은 “빅테크 CEO와의 협력 이외에도 큰 벤처캐피털(VC)과의 만남이 의미가 크다”며 “덕분에 한국의 AI 관련 기업이나 딥테크 기업이 유니콘·데카콘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