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지역 발전, 산업 경쟁력이 전부는 아니다

입력 2026-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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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기차에서 여섯 시간 가까이 뒤척이다 새벽녘에 내리면 온몸이 찌뿌둥했다. 겨울에는 매서운 바닷바람까지 몰아친다. 편안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고생길인 줄 알면서도 몇 번이나 설렘을 안고 다시 찾았다. 정동진이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순간 밤새 쌓인 피로는 잊혔다. 역과 해변은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이곳은 오랫동안 가장 뜨거운 관광지 가운데 하나였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영상을 통해 이제는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영상이 짚은 배경은 흥미로웠다. 정동진을 전국적인 관광지로 만든 것은 바다와 맞닿은 역과 일출뿐 아니라 밤 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는 여행의 과정 자체였다는 점이다. 밤새 먼 길을 달려와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그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마저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추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속철 시대가 열리면서 달라졌다. 더 빨리 갈 수 있게 됐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일부러 찾아가는 특별함은 옅어졌다. 정동진은 하나의 목적지에서 주변을 여행하다 잠시 들르는 여러 장소 가운데 하나로 변했다.

이동시간이 줄어든 것은 분명한 발전이다. 더 빠르고 편리한 교통이 삶을 개선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동진의 변화는 발전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더 빠르고 편리하게 바뀌는 것만이 발전의 전부인가. 낡고 불편한 것을 새롭게 바꾸는 과정에서 그곳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가치까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오랫동안 발전을 속도와 규모로 이해해왔다. 더 빠른 철도와 더 넓은 도로, 대형 산업단지는 모두 발전의 상징이다. 물론 이런 기반은 반드시 필요하다. 산업과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활기가 돈다. 그런 점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과 일자리를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은 균형발전의 핵심 과제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 기업을 유치하고 공장을 세우는 것은 지역 발전의 출발점이지 완성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살고 싶고, 청년이 떠나지 않으며, 외지인이 다시 찾고 싶어야 한다.

산업이 성장한다고 지역이 저절로 함께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이 지역에서 이뤄져도 다른 곳에서 출퇴근하고 소비와 교육, 문화생활을 해결한다면 지역에 남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지역에 주소를 둔 사람뿐 아니라 그곳을 찾아오고 머물며 관계를 맺는 사람도 중요하다. 정주 인구를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면 관광객과 생활인구, 반복적으로 지역을 찾는 사람을 늘리는 것도 지역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업단지와 신도시, 대형 상업시설이 아니라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산업이 성장하는 동안 지역의 문화와 상권, 역사와 자연환경도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지역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와 풍경, 문화에서 나온다.

균형발전은 낙후한 지역을 서울과 비슷하게 바꾸는 일이 아니다. 각 지역이 가진 고유한 자산을 바탕으로 산업과 문화, 관광,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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