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만달러 MOU·계약 성과…가격·현지 규제는 다음 문턱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NCC) 1층 전시장. K팝 공연을 기다리던 베트남 젊은 관람객들의 발길은 무대 앞에만 머물지 않았다. K푸드 체험관과 시식 부스, 분식 코너 앞에도 줄이 이어졌다. 위너 공연을 보러 왔다는 27세 회사원 푹(Phuc)은 “한국 음식이 너무 좋다”며 “떡볶이, 비빔밥, 냉면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연히 행사장에 들렀다는 19세 히엡(Hiep)도 “한국 음식을 원래 많이 먹는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먹고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류가 부른 발길이 K푸드 소비로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2일부터 4일까지 하노이 NCC에서 ‘아세안 K-푸드페어’와 ‘2026 하노이 한류박람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K푸드와 K뷰티, 생활용품, 패션의류 등 소비재를 한류 공연·체험 행사와 묶어 아세안 시장 진출을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국내 107개사와 베트남·동남아 바이어 280여개사가 참여했고, 수출 상담은 1512건, MOU·계약 규모는 3300만달러로 집계됐다.
개막식이 열린 3일 찾은 행사장은 공연장과 식품 전시장, 수출상담장이 한 공간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K뷰티 메이크업 체험과 포토부스가 운영됐고, 다른 쪽에서는 유자에이드와 대추에이드 같은 한국 음료가 제공됐다. K푸드관에는 수입업체 20개 부스가 들어섰고, 이 중 14개사가 51개 제품을 20~50% 할인 판매했다. 스탬프를 모으면 10만동 상당 바우처를 받아 다시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바깥쪽 푸드테크 특별관에는 ‘한강라면’ 기계 5대가 설치돼 소비자들이 직접 한국 라면을 골라 끓여 먹을 수 있게 했다.

행사 분위기는 한류 축제에 가까웠지만, 상담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수출상담회 특유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B2B 상담장은 식품관과 쇼케이스, 바이어 라운지, 현지화 지원·비관세장벽 컨설팅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aT는 신선·가공·과자·음료 등 품목별로 부스를 구분했고, 수출업체와 바이어를 사전에 매칭했다.
송민재 aT 아세안지역본부 부지사장은 “바이어와 수출업체 양쪽의 의향을 확인해 서로 원할 경우 현장 상담이 이뤄진다”며 “최소 일주일 전에 매칭하고 1대1 상담 시간도 이미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바이어들의 관심은 라면과 떡볶이 같은 익숙한 품목을 넘어 건강기능식품과 원재료, 소스류로 넓어지고 있었다. 푹틴푸드의 팜 테 히(Pham The Hy) 대표는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 특히 인삼과 영지버섯 제품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는 2012년부터 한국 떡볶이 제품을 수입해왔고, 앞으로 김과 라면, 다른 가공식품도 수입·유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관심이 곧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팜 대표는 “한국 제품은 베트남 젊은 사람들에게 계속 주목받고 있지만 최근 가격이 올라 청년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며 “베트남 법도 많이 바뀌어 현지 기준에 맞춰 서류를 잘 준비해야 수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도 현장에서 기대와 숙제를 동시에 확인했다. 이번 행사에 처음 참가한 에프앤에스식품은 소스와 시즈닝 파우더를 들고 나왔다. 성유진 에프앤에스식품 상무는 “국내 시장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수출 쪽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며 “현지 업체가 원하는 맛이나 스펙이 있으면 그에 맞춰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담에서는 베트남 치킨 프랜차이즈와 중간 유통업체의 문의가 많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바이어들은 할랄 인증 여부를 물었다. 성 상무는 “어제부터 합해 20군데 정도 상담했고, 70~80%는 샘플을 요청했다”며 “개별적으로 바이어를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매칭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 반응도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일상 소비로 옮겨가고 있었다. 현장 통역으로 참여한 타오는 “예전에는 김치처럼 냄새가 강한 음식을 못 먹는 베트남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드라마와 아이돌, K팝 때문에 방송에 나온 한국 음식을 따라 먹는 사람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하노이에 한국 식당이 많아 친구나 가족과 같이 가고, 여름에는 냉면을 많이 먹는다”며 “마트에서는 한국 아이스크림, 만두, 라면도 많이 산다”고 말했다. 다만 현지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가격은 높은 편”이라며 “너무 짜거나 매운맛을 줄이면 베트남 사람들에게 더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행사의 의미는 K푸드를 단독 상품이 아니라 한류 소비 경험의 일부로 팔았다는 데 있다. 공연을 보러 온 소비자는 체험 부스에서 라면과 분식을 맛보고, 수입업체 판매관에서 제품을 산다. 그 옆 상담장에서는 현지 바이어가 같은 제품군을 두고 한국 수출업체와 가격, 물량, 인증 조건을 따졌다. 무대의 팬덤을 매장과 수출상담장으로 끌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베트남은 K푸드 수출에서도 핵심 시장이다. 1억명 인구와 성장하는 소비시장을 갖춘 데다 한류 관심이 높아 한국 5대 유망 소비재 수출 4위 시장으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대베트남 K푸드 수출은 약 5억7000만달러로 전체 농식품 수출의 약 5.5%를 차지했다. 라면과 소스류, 음료뿐 아니라 딸기 등 신선농산물까지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정부가 베트남을 아세안 전략시장으로 보는 이유다.

정경석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아세안은 우리 농식품 전체 수출액의 약 18.2%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라며 “이번 박람회를 통해 확인한 현지 소비자와 바이어들의 높은 관심과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농식품 수출기업의 아세안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정보 제공, 컨설팅, 물류, 마케팅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K푸드가 베트남에서 더 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K팝 무대로 시작된 관심은 마트 진열대와 식당 메뉴, 수출 상담장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소비자의 호감이 확인된 만큼, 현장에서는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들도 함께 점검됐다. 바이어는 가격과 통관·인증을 꼼꼼히 따졌고, 수출업체는 샘플 요청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계산했다. 하노이 K푸드페어는 K푸드가 아세안 소비자의 입맛을 이미 붙잡고 있다는 확인이자, 가격 경쟁력과 현지 규제 대응을 더하면 더 큰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