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에도 ‘유행’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요즘입니다. 색채 연구소이자 색채 전문기업인 팬톤(PANTONE)이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뿐만 아니라 그해 자연스럽게 패션·뷰티 업계를 장악하는 색이 등장하기 마련인데요. 올해 초여름까진 민트색이 청량한 분위기를 앞세워 주목받았죠.
이어 새롭게 고개를 드는 색이 있습니다. 레몬을 닮은 선명한 노란색인데요. K팝의 비주얼 콘셉트까지 더해지면서 '레몬코어(Lemon Core)'라는 이름도 붙었습니다.

올해 패션·뷰티 업계에서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색은 민트였습니다. 민트코어는 민트 그린과 아이스 블루처럼 차갑고 산뜻한 색감을 패션과 뷰티에 활용하는 흐름을 뜻하는데요. 해외에서는 ‘치약 색’에서 착안한 ‘투스페이스트 드레싱(Toothpaste dressing)’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글로벌 패션계에서도 민트 계열 색상의 존재감은 뚜렷했습니다. 유명 패션지 보그는 3월 민트 그린과 페일 아이스 블루가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이를 ‘투스페이스트 드레싱’으로 소개했는데요. 보그는 지난해 봄·여름 런웨이에서 민트 그린이 블러시 핑크를 대신하는 파스텔 색상으로 활용됐고, 샤넬과 펜디, 지방시 등 컬렉션에서도 민트 계열 색감이 등장했다고 설명했죠.
이 흐름은 레몬코어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지그재그 데이터에서 레몬 컬러 관련 검색량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는데요. 지난달 9~22일 지그재그에서 ‘레몬‘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0%, ‘레몬색’은 333%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레몬색 나시’는 2113%, ‘레몬색 반팔’은 1733% 늘었고, ‘레몬색 가방’도 1200% 증가하며 노란색을 상의와 잡화 포인트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확인됐습니다.
카카오스타일 파트너라운지도 지난달 29일 발행한 블로그에서 "최근 레몬색 컬러를 패션 및 메이크업에 활용하는 레몬코어가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며 "다양한 색감을 코디에 활용하는 '컬러의 해방' 흐름 속에서 한동안 민트 컬러가 화제를 모았다면 이제는 레몬색 아이템으로 시선이 옮겨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레몬코어 ‘붐’이 대중적으로 체감된 데에는 K팝의 비주얼 콘셉트가 한몫했습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에스파(aespa)와 하츠투하츠(Hearts2Hearts)가 비슷한 시기 레몬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목을 끈 바 있죠.
처음에는 콘셉트 중복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에스파는 5월 정규 2집 ‘레모네이드(LEMONADE)’를 발매했고, 하츠투하츠는 지난달 미니 2집 ‘레몬 탱(Lemon Tang)’을 선보였는데요. 같은 기획사 소속 걸그룹이 한 달여 시차를 두고 같은 소재를 꺼낸 만큼, 두 팀의 콘셉트가 겹쳐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레몬’의 맛이 달랐는데요. 에스파의 '레모네이드'는 강렬한 신스 베이스와 에스파 특유의 쇠 맛, 미래적인 이미지가 결합된 콘셉트로 소비됐습니다. 특히 닝닝이 한 음악방송 무대에서 선보인 레몬 콘셉트 메이크업이 화제가 됐죠. 노란빛의 언더 아이라이너, 섀도우를 선택하면서 ‘인간 레몬’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SNS에서 빠르게 확산했고, 한 X 게시물은 3일 기준 338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하츠투하츠의 ‘레몬 탱’은 보다 청량하고 키치한 에너지를 자랑했습니다. 하츠투하츠는 지난달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에스파와 같은 ‘레몬’ 콘셉트로 컴백한 점이 신기했다면서도, 에스파의 ‘레모네이드’가 멋있고 짜릿한 신맛이라면 자신들의 '레몬 탱'은 함께할 때 빛나는 상큼 달콤함이라고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에스파가 레몬을 강렬하고 세련된 미래적 무드로 변주했다면 하츠투하츠는 레몬을 발랄하고 싱그러운 팀 컬러로 소화했습니다. 같은 소재가 각자의 정체성을 비교해 보여주는 장치가 된 셈인데요. 이 과정에서 레몬은 앨범 콘셉트를 넘어 따라 해보고 싶은 스타일 키워드로 번졌습니다. 무대 의상과 메이크업, 콘셉트 포토 속 비주얼이 반복 노출되며 노란색 아이 섀도우와 하이라이터, 네일, 의상, 액세서리처럼 일상에서 시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확장됐고 레몬코어 유행의 체감도를 높였죠.

레몬코어에 대한 관심은 패션·뷰티 플랫폼의 검색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이블리 6월 4주 차 주간 인기 키워드에서도 ‘레몬코어’ 검색량은 전주 대비 257.3% 상승했습니다. 단순히 노란색 제품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레몬코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분위기와 스타일을 함께 탐색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모습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Z세대의 자기표현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패션 비즈니스 매체 보그 비즈니스는 1월 Z세대가 검정과 무채색 중심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밝고 채도 높은 색상을 선택하는 흐름을 조명했는데요. 보그 비즈니스는 리테일 컨설턴트 로버트 버크의 말을 인용해 Z세대가 틱톡과 인스타그램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동시에 '반드시 입어야 하는 트렌드'나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색'처럼 정해진 규칙에는 거리를 둔다고 설명했습니다. 유행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무드에 맞는 색을 골라 쓰는 방식에 가깝다는 겁니다.
레몬코어 역시 특정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유행이라기보다, 레몬색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분위기를 드러내는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란색이라도 누군가는 상의나 가방으로 산뜻한 포인트를 더하고, 누군가는 노란빛 아이섀도우나 하이라이터로 메이크업에 생기를 더하는 방식입니다.
레몬코어는 색을 통해 오늘의 분위기를 고르고, 작은 포인트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잘파세대의 소비 방식을 보여주는 트렌드로 해석되는데요. 민트와 레몬을 이어 다음 계절 등장할 ‘대세’ 색상은 무엇이 될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