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에어컨 '거울치료', 냉소 나온 이유 [해시태그]

입력 2026-07-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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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에어컨 없는 이유와 보급률이 낮은 이유

▲유럽 에어컨 없는 이유와 보급률이 낮은 이유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유럽 에어컨 없는 이유와 보급률이 낮은 이유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매년 이런 여름을 보내고 있었던 거야?

이상한 여름(?)에 행복한 6월을 보냈습니다. 분명 더운 데 그리 덥지 않고, 분명 여름인데 에어컨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딘 탓인데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여름 풍경에 고개를 갸웃 되던 찰나 유럽의 무더위와 반전 소식에 ‘냉소’로 이어졌죠. ‘겨우 이런 더위’라는 비아냥과 함께 말입니다.

한국 여름을 강타했던 특유의 끈적하고 습한 더위가 사라진듯한 요즘인데요. 한낮에는 3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올랐지만, 밤공기는 생각보다 버틸 만하죠. 창문을 열면 눅눅한 열기보다 바람이 먼저 들어왔고 “밤에 선풍기를 틀었다가 추워서 껐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너무 낯선데요.

이는 장마가 늦은 탓도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시작된 제주 장마는 2025년보다 18일 늦은 ‘지각 장마’였는데요. 원래 6월 초·중순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상하며 장마전선을 밀어 올려야 하지만, 올해는 한반도 상공의 찬 공기가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을 막았죠.

같은 시기 유럽은 정반대의 여름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서유럽과 중부 유럽은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휩싸였습니다. 6월 말 서유럽을 강타한 폭염이 중부 유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40도 이상 고온이 이어졌는데요. 예보됐다고 전했다. 유럽 기상당국은 고기압이 뜨거운 공기를 가두고 양옆에서 저기압이 막아서는 모양을 두고 ‘오메가 열돔’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익숙한 ‘열돔’, 한국의 여름을 강타해온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겹친 ‘이중 열돔’ 말이죠. 두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열돔을 유럽은 지금 맞이한 건데요.

▲우크라이나 키이우 도심 거리에서 1일(현지시간) 여성들이 더운 여름 날씨 속에 안개 분사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 도심 거리에서 1일(현지시간) 여성들이 더운 여름 날씨 속에 안개 분사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월에 들어선 뒤에도 유럽의 더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2일 기준 서울은 대체로 흐린 가운데 최고기온이 30도, 최저기온은 21도 수준이었는데요. 3일에도 최고 29도, 4일 31도, 5일 29도 등으로 예보됐죠.

반면 포르투갈 리스본은 같은 날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오르고 최저기온도 25도에 머무는 ‘낮도 밤도 더운’ 폭염권에 들어갔습니다. 포르투갈 기상당국은 리스본에 이번주 토요일 0시까지 적색 고온 경보를 냈고 이후에도 주황색 경보가 이어진다고 밝혔는데요. 스페인 마드리드도 비슷합니다. 2일(이하 현지시간) 최고 36도에서 3일 37도, 4~6일 39도, 7일에는 40도까지 오른다고 경고했죠. 프랑스 파리는 6월 말의 역사적 폭염 정점에서는 한발 내려왔지만, 4일 32도, 5일 30도, 6~7일 32도로 다시 평년보다 높은 여름 더위를 예보했습니다.

이런 더위 교체(?)가 한국 네티즌들의 냉소를 키운 건데요. “유럽은 항상 이런 여름이었나?”, “인제야 고온의 더위를 겪어보는 유럽”, “습도도 낮으면서 엄살은”이란 반응이죠.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여름을 보내왔으면서 에어컨을 트는 국가를 환경파괴로 비난한 거냐”는 지적으로 이어졌는데요.

표현은 다소 비아냥에 가깝지만, 맥락은 확실합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에어컨이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과소비, 탄소배출, 미국식 생활양식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냉방기 보급률이 높은 미국과 아시아의 생활 방식이 유럽의 환경 담론에서 비교 대상으로 소환돼왔죠. 거기다 유럽 일부에서는 에어컨을 ‘필요한 냉방 장치’라기보다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적응, 혹은 도덕적으로 불편한 소비로 보고 비판을 가해왔습니다.

장마와 고습도, 열대야, 도시 열섬이 겹치며 열이 빠져나가지 않는 고통의 여름을 보내왔던 국가에서는 분노할 이야기였는데요. 이제야 그들이 이 고난을 절반이라도 이해하게 된 셈이죠.

▲프랑스 파리의 오스만 양식 주거용 건물 꼭대기층, 아연 지붕 아래에 있는 9㎡ 규모의 아파트에서 24일(현지시간) 21세 울리스 자카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대부분 지역은 폭염의 영향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의 오스만 양식 주거용 건물 꼭대기층, 아연 지붕 아래에 있는 9㎡ 규모의 아파트에서 24일(현지시간) 21세 울리스 자카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프랑스 대부분 지역은 폭염의 영향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지금까지 에어컨을 꺼렸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기후입니다. 유럽, 특히 북서유럽과 중부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이 지금처럼 길고 치명적인 계절이 아니었는데요. 낮에는 덥더라도 밤이면 기온이 내려갔고 창문을 열고 자는 생활이 가능했죠. 더위는 며칠 참으면 지나가는 계절적 불편에 가까워 ‘필수 가전’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집의 구조인데요. 유럽의 주택은 오랫동안 더위를 식히는 집이 아니라 추위를 버티는 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두꺼운 벽, 작은 창, 겨울 난방 중심의 에너지 설계가 일반적이었죠. 1일 미국 매체 Vox에 따르면 EU 가정의 공간 냉방 에너지 소비가 0.8%에 불과한 반면, 난방과 온수 비중은 압도적으로 크죠.

세번째는 설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에어컨 구매와 설치가 익숙한 서비스지만 유럽은 위와 같은 문제로 체감이 매우 다른데요. 유럽의 오래된 도심 아파트에서는 실외기 하나를 다는 일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외벽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일 가능성이 큰 데다 발코니나 외벽에 실외기를 달면 건물 미관 문제가 생기게 되죠. 역사보존 구역에서는 규제가 더 까다롭고 소음과 진동을 이유로 이웃이 반대할 수 있는데요. 실례로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파리 마레 지구의 한 장애인 거주자가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려 했지만, 이웃들이 실외기 소음을 이유로 허락하지 않아 법적 다툼까지 이어진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이와 연결되는 네 번째 이유는 가격인데요. 설치가 어렵다는 것은 곧 비용이 비싸다는 뜻이기도 하죠. 지난달 25일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의 오래된 건물에서는 에어컨 설치가 비싸고 복잡하며, 대기시간도 길어질 수 있는데요. 최소 에어컨 설치 비용이 1000유로(약 177만원)에 달하기에 에어컨 본체를 사는 것과 실제로 집에 달아 쓰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어 버렸죠.

다섯 번째 이유는 바로 환경입니다. 당연하게도 에어컨은 전기를 쓰는데요. 전력 수요가 늘면 발전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늘 수 있고 냉매 유출도 기후에 부담이 되죠. 실외기는 실내의 열을 바깥 거리로 뿜어내 도시 열섬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녹색 정치와 환경 담론에서 에어컨은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더 악화시키는 장치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폭염이 이미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인데요. 에어컨을 비판하는 논리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에어컨을 금기시하는 태도는 위험해질 수 있죠. 40도 안팎의 폭염 속에서 노인, 환자, 장애인, 어린이, 저소득층이 냉방 없는 집에 머물게 되면 에어컨은 그야말로 ‘생명 보호 장비’가 됩니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2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더운 날씨 속에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체코수문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이날 체코에서는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2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더운 날씨 속에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체코수문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이날 체코에서는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제는 프랑스에서는 에어컨이 선거 의제로까지 떠올랐는데요. 유럽 매체 유로뉴스는 지난달 26일 서유럽의 기록적 폭염 속에 에어컨 문제가 프랑스 정치권의 이념 논쟁으로 번졌다고 보도했죠. 가디언 또한 2일 가디언은 유럽 폭염이 주거와 소득, 노동 조건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을 드러내고 있다고 짚었는데요. 더위는 모두에게 오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더위를 맞지는 않습니다. 시원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망설임은 한국과 아시아 기업에는 기회가 되고 있는데요. 지난달 25일 로이터는 유럽 폭염 속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 메이디, 일본 미쓰비시전기 같은 아시아 에어컨 업체들이 판매 호조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유럽의 온라인 판매와 출하량도 움직이고 있죠. 독일 전자상거래 채널의 에어컨 판매는 5월 전년 대비 약 37% 늘었고, 스페인과 프랑스 출하는 전년 대비 108% 증가했는데요. 국제에너지기구 기준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에어컨을 덜 써도 버틸 수 있었던 기후에서 만들어진 도덕론이, 고온다습한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감각으로 변화되고 있는데요. 한국과 동아시아가 이 논쟁을 바라보며 냉소를 보내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죠. 생각을 바꾼 ‘거울 치료’지만 아직도 에어컨은 사치라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거센데요. 이 가운데 점점 더 뜨거워지는 세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에어컨’ 논쟁은 안팎으로 더 뜨거워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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