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전증은 신속한 응급 치료가 중요한 질환이지만 필수 의약품 공급 불안과 신약 도입 지연이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의약품 공급망 관리 체계 구축과 신약 접근성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19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항발작제 공급 안정화와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뇌전증 지속상태는 발작이 장시간 지속되거나 반복돼 즉각적인 응급 처치가 필요한 중증 질환이다. 하지만 최근 항발작제 주사제인 디아제팜주와 페니토인주의 생산·공급 중단에 이어 로라제팜주와 포스페니토인주의 공급 차질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대림 대한뇌전증학회 총무이사(보라매병원 신경과 교수)는 “발작이 장시간 지속되면 저산소증과 뇌손상, 중환자실 입원, 사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대체 약제가 있더라도 작용 시간과 투여 경로, 안전성, 임상 경험 등이 달라 완전한 대체가 쉽지 않다. 특히 응급실과 소아·성인 중환자실에서 사용되는 표준 치료 알고리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 이사는 “응급 항발작제를 국가필수의약품으로 별도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실제 생산 원가와 공급 비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약가 및 원가 보전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또 중앙 비축 시스템과 권역별 응급 재고 모니터링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급 중단 사전 예고 의무를 강화하고 대체 수입 및 위탁생산 절차를 신속화하는 한편 학회·정부·제약사가 참여하는 상시 협의체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해외에서는 새로운 기전의 항발작제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지만 국내 도입과 건강보험 급여 적용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학회는 치료 옵션 확대와 급여 절차 개선을 통해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대원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정부와 제약사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환자의 치료 기회와 국내 의료산업 발전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정책 방향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적절한 방향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미래를 바라봤을 때 지금의 접근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훈철 부이사장(세브란스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보험 재정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현재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며 “필수의료에 필요한 재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회는 진료와 연구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인 뇌전증 CDE(Clinical Common Data Element, 임상 공통 데이터 요소) 기반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추진 중으로 이를 통해 표준화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해 진료의 질을 높이고 연구 활성화와 근거 기반 정책 수립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