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의존성 심화로 국민 퇴보시켜
삼권분립의 실패…자유가치 지켜야

‘2025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작년도 관리재정 수지가 104조 2000억원 적자다. 2020년, 2022년, 2024년에 이어 네 번째로 적자가 100조원을 넘었다. 또 작년 말 국가부채(적자 누적액)는 1304조 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보다 129조 400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는 49%로 2024년보다 3%포인트 늘어났으며, 금년도 본예산 기준으로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여기에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기금 적자 등을 고려하면 정부 재정 적자는 높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제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재정 수지 적자 폭을 GDP의 3% 내로 제한하는 재정 준칙을 추진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가부채는 정체(政體)와 상관없이 오늘날 많은 국가가 당면한 문제이다. 민주정에는 모든 국민이 투표로 정치에 참여하는 이점이 있지만, 다른 정체와 마찬가지로 보통선거로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취약하다. 국가부채 문제도 그런 결과의 하나다. 이는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기대했던 삼권분립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모든 정체는 위정자 집단의 무능, 부패, 독재, 그리고 유권자의 무지 등으로 망한다. 민주정에서는 이런 요소가 위정자의 근시안적 사고에 의해 강화되는데, 증가하는 국가부채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현재의 자원을 동종동량(同種同量)의 미래의 자원보다 더 선호한다. 따라서 현재의 자원은 미래의 자원에 대해 할증되고 미래의 자원은 현재의 자원에 대해 할인된다. ‘할증액/할인액’이 이자이며 그 비율이 이자율인데, 이는 주관적이며 미래의 자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수록 낮아진다.
군주정의 군주는 오래 재임하고 그 자리는 세습되므로 이들은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가에 대한 재산권 의식을 가진다. 따라서 윗세대의 군주가 자신의 국정으로 아랫세대의 군주가 당면할 형편을 간과하지 않는다(패악의 군주는 예외다). 즉 미래의 자원에 대한 군주의 할인율이 높지 않으므로 내 대에 한판 잘 쓰고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반면에 민주정의 위정자 임기는 짧으므로 그의 국가에 대한 주인 의식은 없거나 약하다. 즉 국가에 대한 재산권 의식이 없어 미래 자원을 소중하게 여길 유인이 약하다. 그래서 집권 기간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쓰려는 유인을 가질 수 있다. 도덕성이 낮은 위정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국부(國富)의 근간을 심각하게 망가뜨려 놓고도 통치 행위였다는 언설로 포장하고 퇴임 후에도 편안한 삶을 살면 그만이다.
최근 국가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특히 주인 의식이 없고 부도덕한 일부 위정자들 때문이다. 무상 급식과 무상 교육 등의 퍼주기로 점철된 복지 시리즈, 코로나와 전쟁 등을 빌미로 퍼주는 선심성 현금 살포, 기업을 비롯한 민간이 주도해야 할 기술 개발 등에 두서없이 개입하여 초래하는 재정 낭비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어려울 때는 더욱 아껴 쓰면서 내일을 설계하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 연약한 정신과 국가 의존적 존재가 된다. 현재와 미래를 형량하는 능력인 지성은 퇴보하고 오늘 먹고 즐기려는 풍조가 만연한다. 정권 획득과 유지가 목적인 반지성적 정치인들은 이를 부추기고 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는 없다. 대통령의 제왕적 힘과 단원제인 의회 권력이 한 몸이 된 마당에 견제와 균형 장치가 있을 리 없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대체되었다.
삼권분립이 실패한 마당에 국가부채뿐만 아니라 국정이 몇몇 위정자들의 가치, 도덕, 이념에 따라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사회 질서를 보호하려면 이들의 권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온갖 규제와 세금으로 국민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입법과 행정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를 넓히자는 목소리는 지금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는 불행히도 한국이 알게 모르게 ‘자유’의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의 6·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은 이 정당에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견제와 균형을 상실하고 나날이 커지는 ‘큰 정부’의 한국에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인간 이성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설쳐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사회는 번영은커녕 존속할 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