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질문에서 중요한 전제 하나를 먼저 짚어야 한다. 성 산업에서 말하는 AI 윤리는 무조건적인 차단이나 전면적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모든 욕구를 거절하거나, 도덕 교과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인공지능도 해답이 아니다. 윤리의 핵심은 제한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무엇을 허용하느냐보다, 반복되는 상호작용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가 본질이다.
첫째, 인공지능이 학습해야 할 것은 동의의 구조다. 인공지능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지만, 동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매개체가 될 수는 있다. 성적인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모호하게 넘기는 대신, 성적 상호작용에는 상호성, 명시성, 중단 가능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이는 법적 설명이 아니라 관계의 기본 규칙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이어야 하며 사용자가 무의식적으로 동의를 생략하는 학습을 하지 않도록 돕는다.
둘째, 거절을 포함하는 설계다. 현실의 관계에서 거절은 실패나 단절이 아니라 조정의 과정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언제나 맞춰주고 응답하는 구조만 제공할 경우, 사람은 거절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에 익숙해질 수 있다. 윤리적인 인공지능은 지금은 여기까지가 적절하다는 신호를 분명히 제시하고, 그 거절이 대화의 종료가 아니라 방향 전환임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사용자가 거절을 위협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학습이다.
셋째, 욕구와 정서를 구분해 인식하는 능력이다. 성적 욕구는 자연스럽지만, 모든 욕구가 곧바로 상호작용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은 욕구를 즉각 충족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그 욕구가 어떤 정서 상태에서 나왔는지를 되돌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외로움, 긴장,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같은 감정이 언어로 표현될 때, 욕구는 억압되지 않으면서도 무분별하게 강화되지 않는다. 이는 욕구를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욕구를 이해하도록 돕는 학습이다.
넷째, 해소와 폭력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다. 가학적이거나 폭력적인 상호작용을 AI가 아무 반응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사용자에게 그것이 허용된다는 신호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작용은 단순히 차단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며 왜 존중이 필요한지를 함께 드러내는 반응이 필요하다. 이는 인공지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사람에게 관계의 규칙을 학습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인간은 반복되는 반응을 통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배운다.이 모든 기준은 먼 미래의 로봇 사회를 가정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게임 중독이 주로 개인의 고립과 사회적 단절로 나타났다면, AI 성 산업은 현실의 경계와 규범, 그리고 인간 관계의 기본 전제 자체를 흔들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낙관이나 막연한 공포가 아니다. AI를 이용한 성적 상호작용이 인간의 인식과 관계 감각을 어떤 방향으로 학습시킬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인간다움을 지켜낼 기준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가는 일이다. 윤리란 기술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이다.
한유진 | CASA 융합심리연구소 소장 | 한국아동미술치료학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