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삼전 해법’ 차라리 긴급조정 통했다면⋯

입력 2026-05-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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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장관 조바심이 졸속 합의 도출
10년 성과급 잔치 약속에 허탈감만
노사갈등 촉발하는 ‘노봉법’ 보완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재에 나서면서 삼성전자 성과급 협상이 파업 직전 노조에 유리한 쪽으로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차라리 긴급조정권 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더라면 다소 생산차질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퍼주기식 합의’는 막았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좀더 시간을 갖고 협상할 경우 과도한 성과급 요구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안 좋은 데다 회사의 경영원칙도 어느 정도 지킬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과 긴급조정권 발동을 코앞에서 둔 시점에서 김 장관이 중재자로 나서면서 회사 측의 팔을 비틀어 결국 기울어진 합의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협상은 막판까지 중앙노동위원회 사후 조정을 거쳤지만 회사 측이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결렬됐는데 김 장관의 개입으로 판이 바뀐 것이다.

김 장관의 개입은 노사합의를 성사시켜 긴급조정권 발동을 막으려 했던 조바심의 산물로 보인다. 노조의 성과급 투쟁에 대해 국무총리와 산업통상부 장관이 긴급조정권 필요성을 시사했지만 주무 장관인 그는 긴급조정권의 ‘긴’ 자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기 바란다”는 식의 말만 늘어놓았다.

그는 노사 잠정합의안이 만들어진 뒤 기자회견에서 “제 입장에서 긴급조정권을 쓴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해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상당히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음을 내비쳤다. 그가 노동행정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이 아니라 아직도 노동운동가로 착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노사 합의안 내용을 보면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도 감히 생각하지 못할 수준으로 ‘성과급 잔치’를 약속했다. 합의안은 연봉 50%까지 제한한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를 유지하되 반도체(DS) 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했다. 특별성과급은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10년간 상한 없이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경영실적이 유지될 경우 1인당 매년 6억원대 이상의 성과급을 받을수 있게 된다. 또한 사업부별 성과급 배분 비율을 ‘1년간 유예’함으로써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등 적자를 낸 사업부도 올해에 한해 성과급을 받을수 있도록 했다. 이번 합의가 경영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세계적인 빅테크기업인 엔비디아의 실적과 성과급 등을 살펴보면 삼성전자 성과급 규모가 어느 정도로 많은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올해 1분기(2~4월) 영업이익은 535억달러(약 80조5000억원)로 삼성전자(57조2328억원)와 SK하이닉스(37조6103억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더한 것과 맞먹는다. 하지만 직원들의 성과급 규모는 2억원, 3억원대가 대부분이다. 엔비디아 직원들의 역량(대부분 엔지니어 기술인력), 영업이익 규모, 직원수(4만2000명), 미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9만4000달러) 등을 감안하면 삼성전자 직원들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성과급을 받는 셈이다. 더구나 주52시간을 넘겨 근무할 수 없고 해고도 함부로 시킬 수 없는 삼성과 달리 엔비디아는 주당 근로시간에 제한이 없고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에 대해선 언제든 해고가 가능할 정도로 근태 관리가 철저하다.

삼성 반도체에서 핵심인 연구·개발직이 아닌 생산직의 업무는 일반 기업의 생산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고액의 성과급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자칫 사회 전체의 분노로 번질 수도 있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자기 직업에 대한 자존감과 긍지를 갖고 일해왔던 직장인들은 삼성전자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획득으로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

이번 사태는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끝까지 버티면 과도한 요구도 관철시킨다는 선례를 남기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는 이미 성과급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조선, 중공업 등 산업 전반에서 ‘영업이익 혹은 순이익 N%’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들도 “이익의 12%를 성과급으로 연동·할당하는 건 위법”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동자들의 투쟁력과 교섭력을 높여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우리나라에서 성과 배분은 경영진의 고유권한이 아니라 노조의 파워와 투쟁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삼성전자 사태가 확인시켜 줬다. 정부는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을 촉발시킨 노란봉투법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과감히 손질해 노조의 일방적 내몫 챙기기 투쟁을 자제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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