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중징계 취소가 남긴 과제

입력 2026-05-26 05: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법원에서 이기면 뭐합니까. 그 사이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는 누가 보상해줍니까.”

최근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 제재를 두고 이런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대법원은 금융당국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내린 중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잇따라 확정했다. 대규모 투자자 피해 앞에서 금융회사 대표의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다만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법원이 제재를 취소해도 이미 흔들린 거취와 평판, 개인이 감내한 부담은 되돌리기 어렵다.

대법원은 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NH투자증권에 내린 업무 일부정지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금융당국은 NH투자증권이 펀드를 판매하면서 불확실한 사항을 단정적으로 안내했다고 봤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투자자 주의의무를 충실히 다하지 못했을 수는 있어도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단정적 판단 제공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였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도 옵티머스 관련 문책경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박정림 전 KB증권 사장 역시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 취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법원은 내부통제 기준이 마련돼 있었는데, 사고 이후 “더 실효성 있는 기준이 없었다”는 이유로 CEO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사후적 평가에 가깝다고 봤다.

문제는 법원에서 이겼다고 모든 것이 원상복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중징계는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다. 문책경고 이상을 받으면 연임과 금융회사 취업이 제한된다. 박 전 사장은 연임이 무산됐고, 4연임 가능성이 거론됐던 정 전 대표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다. 몇 년 뒤 대법원이 제재를 취소하더라도 그 사이 잃어버린 시간과 평판, 경영자로서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해 말 치러진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도 이를 보여준다. 자본시장 정상화 기대 속에 업계 안팎의 관심은 컸지만 후보 등록은 세 명에 그쳤다. 출마를 저울질하던 전직 증권사 수장들이 제재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해 발이 묶였다는 뒷말이 나왔다. 금융당국의 판단이 개인 명예를 넘어 업계 대표성 경쟁과 자본시장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제재안이 금융위원회 문턱에서 다시 멈춘 것도 같은 흐름으로 읽힌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2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1조4000억원 규모 과징금과 기관경고 조치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이달 13일 정례회의에서 최종 의결 대신 사실관계와 적용 법령, 법리 보완을 요구하며 금감원에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설명의무 위반과 부당권유 금지 위반을 동시에 적용하는 구조가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과징금 산정이 과도하지 않은지 다시 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금융당국도 할 말은 있다. 라임·옵티머스, 홍콩ELS 사태는 수많은 투자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금융회사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피해라는 비판도 타당하다. 시장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엄정 대응이 필요했다는 논리도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경고 효과가 법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 여론을 의식한 상징적 중징계가 법원에서 무너지면 남는 것은 피해자 보호가 아니라 당국 신뢰 훼손이다.

금융회사도 법정 승소를 면죄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가 충분했는지, 내부통제가 형식에 그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 역시 처벌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거와 판단 과정, 양정 기준을 더 투명하게 남기고 법원 판결까지 축적해 제재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고개 숙인 정용진 “모든 책임 저에게⋯진심으로 사죄, 용서 구한다”
  • 83% "최우선 과제는 생산적 금융"⋯ 中企·지역산업에 돈길 낸다 [은행장 하반기 경영전략]
  • 美 중부사령부 "이란 남부 겨냥해 공격 단행⋯기뢰 부설 선박 타격" [상보]
  • 단독 성희롱에 근무 중 음주·수익금 착복...기강 풀린 콘텐츠진흥원
  • [주간수급리포트] 14.4조 던진 외국인…최고가 랠리서 삼전·하이닉스 먼저 팔았다
  • 치솟는 세종 전셋값…입주 물량 ‘가뭄’에 실수요자 부담 커진다
  • 정부, 非아파트 확대 계획⋯전문가들 "민간 규제 풀어야 진짜 해법"
  • 스페이스X 6월 상장 임박 소식에⋯국내외 우주 관련주 "뜨겁네"
  • 오늘의 상승종목

  • 05.26 11:03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3,862,000
    • -1.08%
    • 이더리움
    • 3,108,000
    • -0.86%
    • 비트코인 캐시
    • 514,500
    • -0.48%
    • 리플
    • 1,990
    • -1.29%
    • 솔라나
    • 125,000
    • -1.73%
    • 에이다
    • 358
    • -0.83%
    • 트론
    • 555
    • +1.46%
    • 스텔라루멘
    • 221
    • +0.45%
    • 비트코인에스브이
    • 21,320
    • -2.11%
    • 체인링크
    • 13,960
    • -0.71%
    • 샌드박스
    • 105
    • -0.94%
* 24시간 변동률 기준